※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앤디(앤 해서웨이)와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런웨이에서 재회했다. 20년 만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앤디는 그토록 꿈꾸던 저널리스트로 성공했고 미란다는 여전히 패션 업계 아이콘으로 군림한다. 이때 사건이 발생한다. 앤디는 뉴욕언론클럽 저널리즘 시상식에서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고, 미란다는 블루카펫을 밟으며 오명을 뒤집어썼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공교롭게도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 위기를 맞닥뜨린 두 사람, 이번에는 기획 에디터와 편집장으로 조우하게 되는데…. 2006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3억2600만달러 이상 흥행 수익을 거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속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첫인상은 ‘속도감이 상당하다’. 앤디와 미란다가 해후하는 계기가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이미 앤디가 미란다의 사무실로 저벅저벅 걸어온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광고주인 럭셔리 브랜드와의 미팅으로 향한다. 그곳엔 해당 브랜드 임원이 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가 있다. 지금껏 미란다 곁을 지키고 있는 나이젤(스탠리 투치)도 빼놓을 수 없다. 반가운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이 지체되지 않으니 몰입감이 배가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모든 일이 삽시간에 벌어진다. 일례로 런웨이의 모기업 회장이 미란다를 그룹의 글로벌 콘텐츠 총괄로 승진시키기로 하고, 이를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공표하기 전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황당함을 감출 길이 없는 가운데 추모 현수막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에밀리는 참석자들의 복장을 훑고 경쟁사에서 뿌린 것 같다며 투덜댄다. 이 스피디한 전개와 시즌1부터 이어지는 강력한 캐릭터성만이 개연성에 대한 의문을 쉴 틈 없이 지워낸다. 영화는 줄곧 이러한 방식으로 후반부까지 내달린다.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하지만 정신을 쏙 빼놓는 흡인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메시지는 낡았다. 작품은 미디어 환경의 격변 속 정통 패션매거진 런웨이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리며, 전통적 사고방식과 현대적 사고방식이 공존하는 지금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 사고방식의 표상은 본질과 정수, 저널리즘의 본령을 부르짖는 앤디다. 그가 유서 깊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아파트를 처음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유도, 미란다의 런웨이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앤디는 시대적 변화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미란다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비전 제시는 없다. 그저 타협할 뿐이다. 이러한 인물의 면모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00년대 대두된 사회 현상을 이제야 다루면서 새로운 시각 하나 없이 전개했다는 점이 아쉽다.
인종차별 논란은 비껴가기 어려워 보인다. 앤디의 어시스턴트 진차오(선위톈)는 이름부터 중국인 비하 표현인 ‘칭총’과 유사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또한 그는 독특한 안경에 각기 다른 체크 패턴의 상하의를 매치할 만큼 패션 감각이 부족한 인물로 묘사되며, 스스로 우수한 성적으로 예일대를 졸업했다고 과시한다. 아시아인의 스테레오타입을 재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회의 중 미란다에게 촬영 결과물을 지적받는 남성 에디터 역시 아시아계로 추정돼 찝찝함을 더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시즌2를 기다려온 시즌1 팬들에겐 최고의 선물이 될 전망이다. 앤디·미란다뿐만 아니라 앤디·에밀리, 앤디·나이젤, 미란다·나이젤 등 여러 관계성이 서사의 곁가지로 엮이며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밀라노 시퀀스가 압권이다. 시공간 변화에 맞춰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고 이에 따라 앤디와 미란다의 명품 스타일링 변주가 숨 가쁘게 이어진다. 앤 해서웨이는 작품에서 무려 47벌이 넘는 의상을 소화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팝가수 레이디 가가가 특별출연한다. 화려하고 풍성한 볼거리가 몰아치는 전개에 올라타니 여러모로 눈을 뗄 틈이 없다. 29일 전 세계 최초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9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