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제철 통합개발센터 연구진들이 제시한 비전은 충남 당진제철소 공장 라인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다. 범용 철강의 한계를 넘어 미래 친환경 에너지 산업의 기반이 될 특수 철강 시장을 선점하고자 하는 치열한 현장을 찾았다.
29일 충남 당진시 아산만 연안에 자리 잡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여의도 면적의 3.02배에 달하는 276만 평의 광활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한보철강을 인수한 이후 현대식 일관제철소를 건립하기까지 총 1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어 완성된 공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철의 도시 구조를 띠고 있었다. 완공까지 총 연인원 1160만명의 인력이 투입돼 세워진 이곳은 연간 1419만톤(t)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현대제철 총생산량의 약 70%를 책임지는 핵심 전초기지다.
과거 자동차 강판 중심의 뼈대를 만들던 이 거대한 공장은 현재 체질 개선의 한가운데 서 있다. 철강재 대량 생산을 넘어, 가혹한 해양 환경과 극저온 에너지 인프라 시장을 겨냥한 ‘고부가가치 신소재 기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항만 부두에 들어서자 청록색의 거대한 ‘밀폐형 연속식 하역기(CSU)’ 10대가 바다를 배경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 원료를 실은 선박이 접안하면 72개의 버킷이 돌아가며 철광석과 부원료를 버킷당 약 1톤씩 무서운 속도로 퍼 올린다. 이렇게 하역된 가루 형태의 원료들은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지상에 60km, 지하에 40km 등 공장 전반에 총 101.63km 길이로 유기적으로 매설된 밀폐형 벨트 컨베이어를 타고 이동한다. 현대제철이 바람에 날리는 비산 먼지와 우천 시 오탁수 형성에 의한 환경오염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친환경 ‘밀폐형 시스템’이다. 이는 철의 도시 깊숙한 곳까지 생명력을 불어넣는 거대한 동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라인을 따라 이동하자 거대한 축구공을 연상시키는 원형 돔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총 7개의 돔 중 철광석의 단가와 성분을 이상적으로 섞어주는 ‘원료돔’ 내부로 진입하자 압도적인 규모의 내부 공간이 펼쳐졌다. 직경 130m에 이르는 크기는 잠실야구장 관중석을 제외한 홈플레이트에서 펜스까지의 거리와 맞먹는 수준이다. 위로 펼쳐진 광활한 천장은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로 설계해 바다 매립지의 약한 지반 고려한 것으로, 해풍으로 인한 부식도 방지해준다. 이 공간에서는 벽면에 기대어 원료를 최대 31m 높이까지 촘촘하게 적치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현장 관계자는 “수입 원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루 상태의 분강은 통기성이 없어 그대로 고로에 넣으면 원활하게 녹지 않는다”며 “백설기를 만들 때 쌀가루를 얇게 깔고 쪄서 단단하게 만들 듯, 분강을 얇게 깔고 가열해 달라붙게 만든 뒤 파쇄하는 ‘소결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고로에 투입할 수 있는 덩어리 형태의 소결광이 된다”고 설명했다.
철광석과 함께 고로의 필수 원료가 되는 석탄도 28시간 동안 고온으로 간접 가열해 찌는 ‘코크스 공정’을 거쳐 가루 형태에서 단단한 코크스탄으로 재탄생한다. 코크스는 철광석이 가진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고로 밑바닥에서 불어넣는 1200도의 화풍을 만나 내부 온도를 최대 2000도까지 가열한다. 이렇게 정밀 가공된 원료들은 110m 높이의 거대한 고로 내부에 소결광 한 층, 코크스탄 한 층씩 겹겹이 쌓이게 된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당진의 심장부라 불리는 3개의 거대한 일관 고로 설비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기당 연간 400만톤씩, 총 1200만톤의 쇳물을 쏟아낸다. 마침 주황색 빛깔의 뜨거운 쇳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출선’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로에서 가동돼 나온 첫 쇳물 ‘용선’은 선로 위에 대기 중인 거대한 원통 형태의 ‘토페도카(혼선차)’ 상부 구멍으로 안전하게 담겼다. 이 쇳물들은 연구소의 미세 합금 제어 기술과 결합해 거친 해양 환경을 견딜 에너지 신소재의 DNA를 품고 제강 공장으로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고로의 열기를 뒤로하고, 중압감이 느껴지는 ‘1후판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네모반듯하게 굳은 반제품 ‘슬라브’가 이동하고 있었다. 표면이 산화돼 거뭇거뭇한 모습이 마치 거대한 양갱 모양을 연상케 했다. 압연 공정 초입에서 엄청난 압력의 고압수가 분사되자, 산화 피막이 순식간에 벗겨지며 투명한 철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어 FM(Finishing Mill) 압연기에서 거대한 롤 사이를 통과하면서 강력한 압하력과 열기에 의해 원하는 두께의 최종 후판 제품으로 길고 넓게 펴진다. 압연 과정에서 올라오는 열이 거리가 있었음에도 피부로까지 와닿아 그간 지나온 공정의 에너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김종철 후판개발팀 책임연구원은 “현재까지 선박용 연료 탱크 등에 3만 톤 이상의 뛰어난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극저온 제어 노하우가 차세대 에너지 시장을 주도할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3월에는 현대건설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특화 강재와 콘크리트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의 ‘부유식 해상풍력 독자 모델 부유체’ 공동 개발 및 특허 출원에 나서는 등 차세대 해양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상협 후판개발팀 책임연구원은 “구조물이 설치되는 해역 환경이 점차 가혹해짐에 따라 해상풍력 시장에서 요구되는 강재의 강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며 “이에 맞춰 두께가 두꺼운 제품(후물재)이 쉽게 변형되지 않는 특화 소재를 현장 라인에 즉각 포뮬러화하여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전기로 복합 프로세스를 연계해 탄소 배출을 줄인 저탄소 후판 제품을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선제 공급하며 친환경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장과 연구소의 유기적 협력이 바라보는 궁극적 종착지는 ‘수소 시대’다. 대량 수송을 위해 수소를 액화하려면 LNG보다 훨씬 가혹한 영하 253℃의 극한 환경과 수소취성(수소가 금속에 스며들어 파괴되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윤동현 후판개발팀 책임연구원은 “현재 값비싼 스테인리스 강재가 독점한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LNG 강재 개발 노하우를 기반으로 –253℃에서도 초저온 인성과 수소 저항성을 확보한 특화 신소재를 독자 기술로 개발 중”이라며 청사진을 제시했다.
윤 연구원은 “중국산 물량 공세 속에서 대량 생산 위주의 경쟁은 끝났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생산 부하를 감수하더라도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부가가치 특수 열처리 소재 비중을 확대해 프리미엄 타겟팅으로 전향하는 것이 현대제철의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의 뼈대를 만들며 축적해 온 쇳물의 기술력은 이제 거시적인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의 동맥을 뚫는 거대한 ‘신소재 핏줄’로 진화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