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 (4)
TSMC는 왜 흔들리지 않나…삼성전자 파업 위기가 던진 질문

TSMC는 왜 흔들리지 않나…삼성전자 파업 위기가 던진 질문

승인 2026-05-19 06:00:08
삼성전자 노조가 4월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삼성전자 노조가 4월2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에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경쟁력이 ‘노사 공식’에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오는 21일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앞두고 운명의 사후 조정에 돌입하며 극심한 진통을 겪는 반면,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는 노사 갈등 리스크 없이 국가적 차원의 총력전을 펼치며 초격차를 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임금 협상 차이가 아니라 보상 체계와 산업을 대하는 사회적 합의 구조의 차이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사면초가’ 속 협상 테이블…“공장 하루 멈추면 1조 손실”

1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에 들어갔다. 양측은 19일까지 이틀간 조정을 이어간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방식 개편 등을 요구하며 오는 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갈등의 핵심은 성과급 제도 개편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확보하고 연봉 50% 상한을 폐지해 지급 기준을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사측은 현행 경제적부가가치(EVA) 기반 초과이익성과급(OPI)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노조가 문제 삼는 건 금액만이 아니다. EVA 방식은 자본비용 계산 방법이 공개되지 않아 영업이익이 아무리 늘어도 직원이 받을 성과급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파업 우려는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으로 번졌다. 삼성전자는 D램·낸드·HBM을 공급하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핵심 기업이다. 생산 차질은 정보기술(IT)·자동차·전장·AI 인프라 등 전 산업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은 파업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40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직접 나섰다. 정부는 긴급조정권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하루 멈출 경우 직접 손실이 최대 1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16일 귀국길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법원 판단도 변수로 떠올랐다. 수원지법은 삼성전자가 신청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했다. 안전·시설 보호·웨이퍼 변질 방지 등 필수 작업은 파업 중에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며, 위반 시 각 노조는 하루 1억원씩 삼성전자에 지급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의 영향을 받는 인력을 약 7000명으로 추산했다.

TSMC의 모리스창 창업자. EPA연합뉴스
TSMC의 모리스창 창업자. EPA연합뉴스

TSMC, 38년간 노조 없이 ‘역대급 보상’… 비결은

TSMC도 높은 업무 강도와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등 해외 공장 확대 과정에서 현지 인력 확보와 비용 상승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만 본토에서는 파업이나 노조 리스크로 생산 라인이 멈출 위험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1987년 창립 이후 38년간 노조가 설립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직원 보상 규모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5년 실적에 대한 연간 성과급은 약 1406억 대만달러(한화 약 6조6200억원)로, 7만7000여명 직원 기준 1인당 평균 180만대만달러(약 8500만원) 수준이다.

양사의 차이는 ‘성과급을 결정하는 구조‘다. TSMC는 성과급을 노사가 협상하지 않는다. FT 등 주요 외신 분석에 따르면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보상·인재 개발 위원회‘가 실적과 투자 계획을 종합 검토해 총액을 결정한다. 회사 성장을 최우선으로 놓고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 재원을 먼저 확보한 뒤 남은 수익에서 보상을 결정하는 구조다. 지난해에는 직원 보상 규모의 7배가 넘는 66조원을 미래 재투자 예산으로 배정했다. 엔비디아·인텔도 현금 대신 주식 보상(RSU)을 활용해 직원이 회사 성장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공유하는 구조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좋은 기업이라면 직원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사 갈등은 단기적으로는 임금 인상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해롭다"고 밝힌 바 있다. TSMC는 직원복지위원회를 통해 경영진과 직원 대표가 근무 환경·복지·조직 운영 문제를 논의하는 소통 구조를 운영 중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TSMC는 실적이 크게 나면 직원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는 문화가 오래된 관행이 됐다"며 “이런 전통이 이어지면서 성과를 나누는 것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그 결과 삼성전자처럼 노조의 불만이 쌓이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TSMC를 흔드는 건 대만 경제를 흔드는 것”…사회적 합의가 만든 ‘방패’

보상 구조 너머엔 더 깊은 차이가 있다. 대만에서 TSMC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 나라를 지키는 ‘실리콘 방패‘로 불린다. 대만 정부는 ’대실리콘밸리 계획‘을 통해 인프라·세제·인력 정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왔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 관계자는 “대만에서 TSMC는 사실상 국가, 대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며 “TSMC의 안정이 곧 대만 경제의 안정이라는 인식이 강해, 정부와 사회가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한국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요하지만, 여러 대기업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강해, 반도체를 ‘국가를 지키는 핵심 산업’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대만만큼 뿌리 깊게 형성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19일까지 협상이 결렬되면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이 다음 카드로 거론된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노위 조정과 중재 절차가 진행된다. 과거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사례는 1969년 이후 총 네 차례에 불과하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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