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 (4)
원전 수출 강국의 마지막 퍼즐, 방사성폐기물 사후처리 [취재진담]

원전 수출 강국의 마지막 퍼즐, 방사성폐기물 사후처리 [취재진담]

승인 2026-05-19 06:00:04
우리나라의 첫 원전 가동은 1978년 고리1호기 상업 운전으로, 미국·프랑스 등 1950년대 가동을 시작한 주요국에 비하면 빠른 편은 아니다. 그러나 고리1호기 첫 가동 이후 한국의 원전산업은 1980년~1990년대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급성장해 전례 없는 속도로 고도화를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에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다. 1세대 기술자들의 역설계 등 노력으로 원전 첫 가동 이후 불과 17년 만인 1995년 한국형 표준 원전을 통해 기술 자립에 성공했고, 이를 향상시켜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또 우리보다 자국 내 원전 기기가 두 배가량 많은 프랑스를 상대로 원전 수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나라가 됐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발(發) 전력 수요 급증에 따라 전 세계는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원전에 대한 수요를 대폭 늘리고 있다. 원전 시공 및 유지·보수 등 수출 경쟁력을 이미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우리가 밟을 다음 스텝은 ‘사후처리’ 문제다.

원전은 탄소배출이 적고 발전단가가 낮아 가성비 높은 발전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농축 우라늄 등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영구처분·보관해야 하는 맹점도 갖고 있다. 원전에서 사용된 도구들(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약 60년 이상 원전을 가동해 온 글로벌 주요국 모두가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한국이 지난 13일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내 표층처분시설 준공을 통해 기존 지하(동굴처분시설)는 물론, 지상까지 포함한 세계 여섯 번째의 복합처분시설 보유 국가가 된 것은 사후처리를 포함한 원전 전주기 밸류체인 구축의 시작점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다음 스텝의 첫 발걸음이다.

특히 우리는 설계수명을 다하고 가동을 멈춘 가압경수로형 고리1호기와, 가압중수로형 월성1호기의 해체작업에 돌입(월성1호기는 해체 승인 중)한 상태다. 두 기기의 노형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원전산업에 있어 실제 원전을 해체해볼 수 있는 중요한 테스트베드가 되며, 이는 곧 최소 5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글로벌 원전해체 시장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원전해체 인프라를 확보하려면 방폐장 인프라가 선제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원전해체 폐기물 수용은 물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 성과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원전해체, 방폐장 인프라 등 사후처리에 대한 기술 입증은 전주기 밸류체인 수출 패키지를 완성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표층처분시설 준공식에 원전을 필요로 하는 여러 국가 관계자들이 참석해 관심을 드러냈다. 우리 입장에선 이 기회를 살려야 할 시점이다.

물론 원전해체와 방폐장 운영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은 ‘안전’이다. 지역경제 성장을 위해 사실상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 된 방폐장 인근 주민에 대한 수용성 확보와 효율적인 보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향후 노후 원전의 해체 사례가 늘어나고, 방폐장 규모 역시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이 두 가지 요소는 중저준위 방폐물 반감기가 도래하는 약 300년, 사실상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정부와 지자체가 단단히 구축해 놓아야 할 유산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원전은 분명한 친환경 에너지다. 그러나 사후처리가 제대로 동반되지 못한 원전 생태계는 더 이상 친환경 이름표를 붙일 수 없다. 글로벌 탄소중립의 최종 목적이 결국 미래 세대에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는 데 있는 만큼, 원전이 진정한 무탄소에너지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생태계가 빠르게 구축될 수 있길 바란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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