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가 전략 과제로 추진된 주요 인프라 구축 사업들이 초기 실행 단계에 본격 진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부는 대규모 자원 확보와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올해 1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AI기본법‘을 시행한 데 이어, 5월에는 ’AI데이터센터(AIDC)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핵심 연산 자원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2030년까지 26만장 이상 확보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총 2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연내 인프라 구축을 마치고 2027년부터 산학연에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예산 규모도 대폭 늘었다. 정부 총 AI 예산은 10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이 중 과기정통부 소관 AI 대전환 예산만 4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증액됐다. 정부 R&D 예산 전체도 역대 최대인 35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 대규모 투자의 발목을 잡아왔던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는 올해 2월 폐지하고 맞춤형 사전점검 제도로 전환했다.
국제 평가도 나쁘지 않다. 스탠퍼드대가 발표한 ‘2026 AI 인덱스 리포트’에서 한국은 2025년 출시된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 기준으로 미국·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인구 대비 AI 특허 수는 2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확보한 GPU와 데이터센터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클라우드 사업자는 인프라 투자 수혜를 비교적 빠르게 누릴 수 있지만, 스타트업과 중소 AI 기업은 실제 GPU 접근성과 비용 부담 완화가 얼마나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반도체 산업도 업황 회복과 정책 지원이 맞물리며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734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로 SK하이닉스가 시장 주도권을 잡았고, 삼성전자도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들도 지갑을 열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R&D 투자로 110조원 이상을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투자액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규모다.
반도체특별법도 마침내 결실을 봤다. 수개월간 국회에 묶여 있던 반도체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 통과됐다. 정부가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을 직접 설치하고 2036년까지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회계를 운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용인 반도체메가클러스터 조성 사업도 이를 계기로 추진력을 얻었다.
100조 펀드 지연·수도권 배제 논란…노동 유연성은 ‘과제’
다만 세부 정책 시행 과정에서 현장과의 온도 차도 존재한다.
정부 주도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은 초기 일정보다 지연됐다. 당초 지난해 12월 말 1차 심사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GPU 환경 최적화와 데이터 공급 문제가 겹치면서 심사 시점이 밀렸다. 공약이었던 ‘100조원 규모 AI·반도체 전용 펀드’도 재정 여건으로 추진력이 약화됐다.
반도체특별법 후속 시행령도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산업부가 마련 중인 시행령안에 메가클러스터 지정 신청 요건으로 ‘수도권 외 지역’이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에 포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업체들이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전력·용수 인프라도 발등의 불이다. AIDC와 반도체 생산시설 모두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지만 수도권 전력 공급 여력은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공업용수 확보도 지자체 간 이해관계와 환경 문제가 얽혀 정부의 조정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100조원 AI 투자 재원 확보도 풀어야 할 숙제다. 총 10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는 정부 예산과 국내 AI·클라우드 업계의 자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알리바바 클라우드 등 해외 빅테크와 민간 협력 투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인력 유연성 문제도 여전하다.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은 반도체특별법 최종안에서 끝내 빠졌다.
국가AI전략위 출범…초기 인선 지연에 따른 행정 공백
범정부 컨트롤타워 정비 과정에서는 초기 진통을 겪었다. 정부는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AI 정책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를 지난해 공식 출범시켰다. 관계 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 등 30인 체제로 구성된 위원회는 데이터 개방, AI 융합 제조 혁신 등 범부처 현안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출범 직후 민간 위원 및 부위원장 인선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두 달 가까이 첫 전체회의조차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주요 정책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공백도 발생했다. 현재는 정상 가동 궤도에 오랐으나, 초기 행정 공백이 정책 추진 속도에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 1년 동안 AI와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분명히 설정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GPU 확보와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 반도체특별법 통과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김득중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부원장은 “GPU 기반 AI 고속도로 확보와 스탠퍼드대 선정 주목할 만한 AI 모델 8개로 세계 3위에 오른 것이 지난 1년의 대표적인 결실”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앞으로의 과제는 더 어렵다. 정부가 확보한 AI 인프라를 실제 산업 현장의 변화로 연결해야 한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머물지 않고 제조, 반도체, 조선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의 AX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법과 제도가 기술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AI는 기술 변화가 빠르고 활용 범위도 넓다. 지나치게 경직된 규제는 기업의 실험과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반대로 안전과 보안 장치가 부족하면 이용자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산업 육성과 신뢰 확보 사이 균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과감한 규제 혁신 등 제도적 보완 과제도 꼽혔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은 “폭넓은 기술 발전을 위해 연구개발(R&D) 단계에서는 AI기본법 규제 예외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제도를 개선해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