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제약바이오 업계는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망 불안과 미국의 품목관세 변수, 기업별 실적 부담이 겹치며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미국이 한국산 수입 의약품에 15% 별도 관세를 적용하고,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복제약)에 최소 1년간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업계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2분기 역시 대외 변수는 여전하지만, 주요 글로벌 학회를 앞두고 바이오텍들의 임상 성과 공개가 예고돼 기대감이 높아진다. 실적 부진과 대외 악재로 눌렸던 업종 분위기가 기술성과에 따라 반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분기 수출액 ‘6조원’ 돌파…기업별 실적 희비
9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올해 1분기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액은 6조원을 넘어서며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최근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월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액은 41억6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월별로는 3월이 15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3% 증가했고, 2월은 13억1000만달러로 7.1% 늘었다. 1월 역시 13억5000만달러로 18.3% 증가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협회는 올해 바이오·헬스 수출이 전년 대비 약 9% 증가한 304억달러(약 4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시장에서 수요가 확대되면서 최근 5개월 연속 수출 증가세를 이어갔다.
업황은 호황이지만, 전체 기술수출 계약 규모나 기업별 실적을 구분해서 보면 낙관적이진 않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기업의 올 1분기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약 9억3670만달러(약 1조4000억원, 비공개 계약 제외)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 19억8000만달러(약 3조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수치다. 최근 5년간 매년 1조원을 웃도는 ‘빅딜’ 계약이 있었지만, 올 1분기에는 1건도 없었다. 계약 건수는 4건으로, 작년 1분기 5건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기업들은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셀트리온은 1분기 일회성 비용과 재고 영향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셀트리온의 올 1분기 연결 매출은 약 1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익 모두 증가한 수준이지만, 시장 기대치는 밑돌 전망이다. 미국 현지 공장 인수 이후 가동을 위한 준비 비용이 단기적 실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대웅제약은 중동 리스크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새로운 성장 지역 중 하나였던 중동에서 전쟁으로 인해 출하 예정이었던 40~50억원 분량의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가 선적되지 못한 것이다. 국내 이슈도 실적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키움증권은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으로 인해 외형 성장세가 꺾이고, 유통 채널 재편에 따른 도매처 수요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영향이 더해지며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 등 전문의약품(ETC) 마진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올 1분기 매출액은 3856억원, 영업이익은 384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노사 갈등이 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자극하며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조는 평균 14%에 달하는 임금 인상과 전 직원 3000만원 격려금 지급, 3년간 자사주 배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 공정 특성상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회사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관세 리스크’ 해소됐지만…‘중동 리스크’ 여전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고 있지만, 업계는 올 2분기를 기대해 볼만하다고 평가했다. 우선 미국 관세 리스크가 해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일본, 스위스 등 미국과의 무역합의국에서 생산된 의약품은 15%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핵심 수출 품목인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및 관련 원료는 당장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1년 후 재검토한다.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한 제약사에 한해서도 낮은 관세를 적용할 방침이다. 백악관은 “보건복지부와 최혜국 대우 가격(MFN) 협정을 체결하고, 상무부와 온쇼어링(미국 국내 생산) 협정을 체결하는 기업에 대해선 오는 2029년 1월20일까지 0% 관세가 적용된다”며 “상무부와 온쇼어링 협정에만 참여하는 기업들은 20% 관세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미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실적 향상도 전망된다. 다올투자증권은 셀트리온의 미국 공장 가동 효과가 점진적으로 매출에 반영되고,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면서 실적 정상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연간 매출은 약 5조원, 영업이익은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했다. 주요 후보물질의 임상 결과에 따라 신약 가치 재평가 가능성도 기대된다.
삼성증권은 “셀트리온이 1분기 이후 계절적 바닥을 통과하며 분기 성장이 재개되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서근희 연구원은 “하반기 신제품 매출 가속과 마진 개선 효과가 본격 반영되면서 주가 모멘텀 회복이 전망된다”며 “미국에서 직판 체계를 이미 갖춘 만큼, 정책 수혜를 가장 빠르게 실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더해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을 골자로 한 주주 환원 정책 강화는 밸류에이션 리레이팅(회사 가치 평가 상향)의 추가 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진다. 하나증권은 1분기 매출액 1조2647억원, 영업이익 560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6.5%, 29.9% 증가한 수치로, 영업이익률(OPM)은 44.2%로 예상된다.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공장은 실적을 끌어올릴 전망이다. 록빌 공장 인수에 따라 연간 2500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올해 연간 추정치의 약 4.2% 수준이다.
글로벌 학회 임상데이터 공개 기대감
2분기에는 미국암연구학회(AACR)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등 주요 학회를 기점으로 바이오텍들의 임상 데이터가 잇따라 공개될 예정이어서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대규모 기술수출 기대감도 높아진다.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AACR에선 한미약품, 에이비엘바이오, 리가켐바이오, HLB그룹, 앱클론, SK바이오팜 등의 항암 파이프라인 연구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이후 5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미국 시가코에서 개최되는 ASCO에는 유한양행의 연구개발 자회사인 이뮨온시아, 신약 개발 기업 지아이이노베이션,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연구개발 전문기업 티움바이오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올 2분기를 단순한 실적 회복 구간보다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각 기업의 체력과 파이프라인 경쟁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되는 시기로 보고 있다. 1분기에는 지정학적 리스크, 일회성 비용 등 외부 변수의 영향이 컸다면, 2분기부터는 신제품 출시 성과와 해외 매출 확대, 주요 학회에서 공개될 임상 데이터의 질이 기업 가치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학회 발표 이후 후속 계약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논의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물류·원재료 부담, 약가 정책 변화, 금리와 투자심리 위축 등 복합적인 변수도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업황 자체가 나쁘다기보다 종목별 차별화가 훨씬 뚜렷해지는 국면”이라며 “바이오시밀러처럼 이미 매출이 나오는 사업은 관세와 공급망 이슈에 대한 대응력이 중요하고, 신약 개발 기업은 임상 데이터의 완성도와 기술이전 가능성이 더 중요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분기는 기대감만으로 평가받기보다 실제 성과로 옥석이 가려지는 분기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