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6)에서 주요 항암 파이프라인의 초기 연구·임상 성과를 잇달아 공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올해 AACR에선 항체약물접합체(ADC), 이중항체, 항체분해약물접합체(DAC) 등이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최초 공개 데이터와 후속 임상 전략을 앞세워 개발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AACR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거 참가했다. AACR은 전 세계 140여개국 연구자와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 2만2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암 연구학회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힌다. 이번 AACR은 ‘전 세계 생명을 살리기 위한 암 과학의 진전(Advancing Cancer Science to Save Lives Globally)’을 주제로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올해 학회의 최대 화두는 ADC, DAC, 유전자 치료제(CGT), 이중항체,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 등 차세대 플랫폼 기술이다. 신약 개발 기업을 비롯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까지 참가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알지노믹스, ‘RZ-001’ 임상 결과 공개…‘완전관해’ 확인
리보핵산(RNA) 치료제를 개발 중인 알지노믹스는 환자 대상 임상 연구 데이터를 발표했다.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발표자로 나선 알지노믹스는 항암 유전자 치료제 ‘RZ-001’의 임상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RZ-001은 암세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텔로머라제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표적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고, 동시에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는 기전의 치료제다.
이번에 공개된 임상 결과를 보면, 간동맥화학색전술(TACE)로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처음부터 TACE 적용이 어려운 간세포암 환자 가운데 전신 치료를 받은 적 없는 환자들에게 RZ-001을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과 함께 투여한 결과, 종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 환자가 확인됐다.
국제 평가기준인 RECIST v1.1 기준으로는 객관적반응률(ORR)이 38.5%였고, 최종 확인 전 사례까지 포함하면 46.2%였다. 간암에서 보다 실제 치료 반응을 잘 반영하는 mRECIST 기준으로는 ORR이 61.5%까지 올라갔고, 암이 영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완전관해(CR)는 23%로 집계됐다. 기존 TACE 치료가 어렵거나 효과가 없던 간세포암 환자에게 3제 병용요법을 썼더니 평가 기준에 따라 환자 10명 중 4~6명에서 종양이 줄었고, 일부는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는 뜻이다. RZ-001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중증 이상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회사 측은 기존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 대비 종양 반응 깊이와 반응률 측면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는 “이번 AACR 발표를 통해 RZ-001의 초기 임상 가능성을 글로벌 학계에 제시했다”며 “RNA 기반 트랜스 스플라이싱 플랫폼의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름테라퓨틱 ‘ORM-1153’, 백혈병 억제 효과
차세대 DAC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오름테라퓨틱은 ‘ORM-1153’의 신규 전임상 데이터를 발표했다. ORM-1153은 독자적인 TPD(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을 적용해 GSPT1 분해제를 페이로드(독성약물)로 탑재하고 이를 CD123 항체를 통해 선택적으로 전달하도록 설계된 DAC 후보물질로, 급성골수성백혈병(AML) 및 기타 CD123 양성 혈액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전임상 결과에 따르면, ORM-1153은 저용량에서도 백혈병에 대한 강한 억제 효과를 보였다. 약물이 종양 내부에 오래 머무는 특성도 확인됐다. 특히 영장류 반복 투여 시험에선 약물이 체내 전반으로 퍼져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시사하는 ‘유리 페이로드’가 검출되지 않았다. 전신 독성 우려를 낮추면서 관리 가능한 안전성과 내약성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올라프 크리스텐슨(Olaf Christensen) 오름테라퓨틱 최고의학책임자(CMO)는 “TP53 돌연변이 환자들이 여전히 제한된 치료 옵션과 불량한 예후에 놓여 있는 AML 분야에서 이번 AACR 데이터는 특히 고무적”이라며 “1차 환자 샘플과 TP53 관련 모델 전반에서 확인된 활성, 일관된 약리학적 특성, 안정적인 내약성 프로파일은 ORM-1153의 지속적인 임상 개발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네수파립·이리노테칸 병용, 종양 억제 유지
제일약품의 신약개발 전문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난치성 암종인 소세포폐암(SCLC) 치료를 겨냥한 ‘네수파립’의 비임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SCLC은 높은 증식률과 빠른 재발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난치성 암이다. 세포의 증식과 사멸에 관여하는 c-Myc 유전자와 종양세포의 증식 지표인 Ki-67과 같은 증식 관련 인자의 높은 발현이 특징이다. 네수파립은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이번 연구에서 네수파립은 SCLC 세포주 모델에서 단독 투여 시 기존 폴리 ADP-리보스 중합효소(PARP) 저해제 ‘올라파립’ 대비 최대 133배, SCLC 치료에 사용되는 항암제 ‘이리노테칸’ 대비 약 25배 강력한 암세포 성장 억제 효능을 나타냈다. 특히 이리노테칸과의 병용에서 효과가 도드라졌다. 네수파립 용량을 단독 대비 50%, 25% 낮춘 조건에서도 병용 시 71.9%, 66% 수준의 높은 종양 억제 효과가 유지됐다. 반면 올라파립은 병용 투여 시에도 추가적인 항종양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전체 소세포폐암 환자 가운데 최대 70%를 차지하는 대표적 아형인 ‘SCLC-A’ 모델에서 진행됐다. 이에 따라 네수파립의 항종양 효과가 향후 더 넓은 환자군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기대된다. 온코닉테라퓨틱스 관계자는 “핵심 종양 구동 인자인 c-Myc과 YAP 단백질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소세포폐암의 다양한 분자 아형들에 적용 가능한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바이오 CRDMO, 롯데바이오 ADC 역량 소개
신약 개발사뿐만 아니라 CDMO 기업들의 행보도 분주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ACR에 처음 참가해 ‘삼성 오가노이드’를 중심으로 초기 연구개발부터 상업생산까지 연결하는 위탁연구개발생산(CRDMO) 역량을 소개했다. 위탁연구(CRO), 위탁개발(CDO) 수요가 높은 개발 초기부터 고객사와 협업을 시작해 상업생산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조기 록인(lock-in)’ 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RDMO 경쟁력을 알리기 위한 발표에도 나선다. 알렉시스 산타나 오가노이드 세일즈 디렉터가 환자와 높은 유사성을 지닌 오가노이드 서비스를 활용해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일 가능성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실제 환자의 유전적 특성과 약물 반응을 재현하고, 임상 결과와 높은 상관성을 보인 삼성 오가노이드 데이터도 공개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카나프테라퓨틱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ADC 플랫폼 ‘솔루플렉스 링크(SoluFlex Link)’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기술은 ADC의 응집을 억제해 시간 경과에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회사에 따르면 이 기술을 적용한 세포·동물실험에서 기존보다 적은 양으로도 항암 효과가 나타났고, 약물이 몸 안에서 더 안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특정 항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ADC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범용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보로노이는 폐암 치료 후보물질 ‘VRN11’ 임상 1상 결과를, HLB 자회사 엘레바테라퓨틱스는 FGFR2 표적 항암제 ‘리라푸그라티닙’의 선택성을 입증한 데이터를 발표했다. 키메릭 항원 수용체-T(CAR-T·카티) 치료제 개발기업 큐로셀은 서울대병원 특화연구소, 스탠퍼드대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카티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한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AACR에서 기술 콘셉트 소개에 그치지 않고 실제 효능과 안전성,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함께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질적 성장 흐름이 확인됐다”며 “초기 연구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역량을 부각하고 있어 생태계 전반의 글로벌 존재감이 한층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