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 (4)
재택의료는 단순한 방문진료가 아니다: 개념의 재정립 [병원이 집으로]

재택의료는 단순한 방문진료가 아니다: 개념의 재정립 [병원이 집으로]

송대훈 대한재택의료학회 정책위원장, 한국재택의료협회 이사 (연세송내과의원 원장)

승인 2026-05-28 06:00:08 수정 2026-05-29 17:29:27
내가 처음 방문 가방을 들고 80대 환자의 집 문을 두드린 것은 몇 해 전이다. 그 사이 한국의 재택의료는 외형으로는 빠르게 성장했다.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만 422곳에 이르고, 장애인·치매 주치의와 일차의료혁신시범사업까지 합치면 사업 수만 다섯을 넘긴다. 그러나 현장의 풍경은 그 외형과 어긋난다. 의사 한 명이 가방을 들고 가 안부를 묻고 처방전을 쓰고 돌아오는 일이 재택의료의 전부가 되어 있다.

이것은 재택의료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일본·미국·대만의 제도를 들여다보면 재택의료는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일상 질환을 다학제 팀이 관리하는 ‘재택일차의료(Home-Based Primary Care, HBPC)’, 급성기 입원에서 안정된 환자를 자택에서 회복시키는 ‘퇴원 후 관리(Post-Acute Care, PAC)’, 폐렴이나 요로감염처럼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집에서 입원과 동등하게 치료하는 ‘재택입원(Hospital at Home)’, 환자가 원하는 자리에서 마지막을 맞도록 돕는 ‘자택임종(지역사회 생애말기돌)’. 우리나라에는 이 가운데 재택일차의료 하나만 존재한다.

다학제는 재택의료의 형식이 아니라 본질이다. 다학제는 임종이나 재택입원 같은 복잡한 사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일상을 관리하는 재택일차의료부터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노인 환자에게는 의학적 처방만큼 영양, 재활, 사회복지 자원 연계, 가족 돌봄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노인의학의 4Ms 모형이나 WHO의 ICOPE는 환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What matters)’를 의료의 출발점으로 둔다. 이런 접근은 의사 한 사람의 30분 진료로 대체될 수 없다. 간호사·약사·사회복지사·영양사·작업치료사가 한 팀으로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우리 제도가 ‘의사 1인 방문 수가’ 중심으로 짜여 있는 한, 이 본질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재택입원은 더 절박하다. 미국과 대만에서는 폐렴, 심부전 악화, COPD 악화 환자가 응급실 대신 집에서 24시간 모니터링과 정맥 항생제 치료를 받는다. 무작위 대조시험은 재택입원이 입원기간을 줄이고 합병증과 재입원을 낮추며 비용도 절감한다는 결과를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은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응급실은 포화 상태이고, 의료중심요양병원 정책으로 요양병원의 장기입원이 어려워지면서 ‘갈 곳 없는 환자’가 늘고 있다. 재택입원은 이 빈자리에 가장 먼저 놓여야 할 대안이다.

자택임종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시급한 영역이다. 우리 재택환자의 70% 이상이 치매를 동반하고, 가족은 사망 직후 경찰조사를 두려워해 임종이 임박하면 119를 부른다. 환자는 평생 살던 집을 떠나 응급실 침상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일본은 임종 전 수 주간의 집중 임종돌봄과 의사의 임종 동석에 별도의 가산수가를 둔다. 대만은 ‘안녕거가요호(安寧居家療護)’라는 이름으로 24시간 on-call·증상조절·사망진단서 발급·사후 유족관리까지 한 팀이 일원화해 제공한다. 한국에도 ‘지역사회 생애말기 돌봄’이라는 정책 언어가 자리를 잡았지만, 이 언어가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와 사망 후 행정절차의 정비, 야간·심야 방문 가산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의 재택의료가 이런 전문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동일한 방문진료가 장기요양·장애인·치매·일차의료혁신 등 시범사업으로 쪼개져 사업마다 교육·서식·수가·청구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 사이 안부만 묻고 진통제를 처방하거나 비급여 수액을 권유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50여 곳에 그친다는 분석도 있다. 거점 재택의료센터를 허브로 키우고, 사업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일원화하며, 비급여 보고를 의무화하는 일이 동시에 가야 한다.

재택의료는 외래의 변형이 아니다. 입원의 대체이고, 임종의 동반이며, 다학제 돌봄의 통합이다. ‘방문진료’라는 좁은 단어로 이 영역을 묶어두는 한, 사업은 늘어도 환자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는 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가의 증액 이전에 개념의 재정립이다. 무엇을 재택의료라 부를 것인지에 먼저 답해야, 422개 센터가 진료의 외형이 아닌 진료의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다. 환자가 집에서 살고, 회복하고, 마지막까지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재택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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