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KF-21 블록Ⅱ 양산을 위한 내년도 첫 예산 625억원 편성을 의결함으로써 후속 양산 착수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KF-21은 1600여 회의 비행시험을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며 기술적 검증은 마쳤으나, 본격적인 양산 궤도 진입 이후 앞으로 4~5년간 쏟아부어야 할 막대한 청구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불어난 예산’ 문제가 현 상황의 핵심 쟁점으로 자리잡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검토 결과, 물가 상승과 고환율, 공급망 불안정 등이 겹치며 블록Ⅱ 후속 양산(80대) 비용이 당초 추산액인 14조2440억원에서 29.5% 급증한 18조4422억원으로 뛰었다. 당초 방위사업청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양산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전력 공백을 우려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내년 예산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다만 방산업계는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변수가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약 29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핵 추진 잠수함 사업 등 대형 국정과제와 예산 경쟁이 불가피해 양산 일정이 다시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 경합에서 밀려 양산이 지연될 경우 나타날 가장 큰 부작용은 ‘안보 공백’과 ‘비용 상승 압력’이다. 공군은 당초 2030년이던 노후 F-5 전투기 퇴역 일정을 2027년으로 앞당기려 했으나, KF-21 전력화가 밀리면 2028년부터 2034년까지 약 6년간 심각한 공중 전력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2000년 이후에만 추락 사고로 16명의 조종사가 순직한 노후 기체를 무리하게 연장 운용해야 하는 실질적인 안전 위협이 뒤따르는 것이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양산 라인이 흔들리면 수백 개의 1·2차 협력업체 공급망이 붕괴하고 고정비가 증가해, 재가동 시 오히려 막대한 비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기술 종속 리스크 또한 양산 지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 KF-21의 핵심 부품인 캐노피(조종석 덮개)를 공급하는 미국 업체 텍스타즈(Texstars)가 납품 단가를 2~3배 인상하고 생산시설 투자 비용까지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후속 양산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체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최대 620억원이 더 필요하지만, 약 200억원을 투입해 당장 국산화를 완료하기엔 전력화 일정상 불투명해 미국 등 해외 원천 기술에 묶인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일각에서는 핵심 부품 국산화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업계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투기 핵심 부품의 국산화 추진 주장에 원론적으론 공감하지만, 엔진이나 캐노피까지 100% 국산화한다는 전제하에 KF-21을 개발했다면 기간과 비용 리스크가 상당 부분 증가했을 것”이라며 “만들 수 있느냐보다 미국 등 선진 방산기업과 동일한 품질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궁극적으로 K-방산 수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무기 체계 수출의 결정적인 지표는 자국군이 축적한 실전적인 운용 실적이다. 자국 공군마저 예산 문제로 전력화를 미루고 속도를 조절하는 기체라면 잠재 수출국들에게 불안 시그널을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수출의 ‘골든타임’을 놓쳐 국가 방산의 경쟁력 자체가 악화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KF-21 양산이 4년 지연되면 실제 글로벌 시장 진입 시점은 8~10년이나 밀리게 된다. 특히 일본, 영국, 이탈리아 등의 방산 강국이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 GCAP가 최근 통합계약을 체결하며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속도전에서 밀릴 경우 현재의 시장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중국 역시 F-35 도입이 어려운 중동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수출형 5세대 전투기 J-35를 앞세우고 있어, 우리가 정조준했던 시장을 고스란히 뺏길 위기에 처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K-방산이 잘 나가는 첫 번째 이유가 가격 경쟁력인데, 단가가 계속 높아진다면 과연 대체 기종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이어 “캐노피는 물론 엔진과 핵심 비행 운영 체계(OFP) 등 주요 장비에서 여전히 미국 기술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어, 대당 1000억 원대 수준으로는 5세대 기종 대비 매력적인 수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카이(KAI) 단독의 역량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기 어렵다면 경영 다각화나 민영화 검토 등이 필요하며, 이 복잡한 난제를 풀고 방산 정책 수립 및 집행을 조율할 정부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