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세반 꼭 있어야” 기업은행의 이유 있는 고집 [저출생, 기업의 시간⑧]

“0세반 꼭 있어야” 기업은행의 이유 있는 고집 [저출생, 기업의 시간⑧]

금융권 최초 중소기업 공동직장어린이집
“믿고 맡길 곳 있어 둘째 생각” 학부모 만족
컨소시엄 맺기 꺼리는 사측…이직하는 학부모까지
불경기에 문 닫는 기업·저출산으로 모집 어려움

편집자주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핵심은 부모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부담 없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일·가정 양립에 기여하고 있는 기업의 모범사례를 찾아봤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IBK인천남동사랑어린이집에서 지난 6월25일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놀이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요새 황혼육아가 흔하잖아요. 맞벌이라 양가 도움이 절실한데 저희는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남동어린이집이 없었다면 둘째는 생각 못 했을 거예요. 조리원 동기랑 다른 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라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연다. 최대 오후 9시도 가능하다. 오전 간식, 점심, 오후 간식에 이어 저녁까지 4끼가 나온다. 하원하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차릴 필요 없어 워킹맘은 대환영이다. 뿐만 아니다. 영어, 체육, 음악 등 방과후 수업을 포함해 보육료, 입학비 전액 무료. IBK기업은행의 공동직장어린이집의 얘기다.

기업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중소기업 공동직장어린이집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컨소시엄을 맺은 인근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생형 모델이다. 인천 남동구 IBK 남동사랑어린이집과 경북 구미시 IBK 구미사랑어린이집 2곳이 있다. 지난 5월 기준 컨소시엄을 맺은 기업 수는 각각 43개, 50개다.  

IBK인천남동사랑어린이집 옥상에 마련된 놀이공간에서 아이들이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중소기업 특수성 고려해 0세반 고집…“‘먹태기’가 안 와요” 학부모 미소

기업은행은 유휴 공간을 활용, 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정부 지원금 외에 추가로 드는 설치,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부담한다. 자사 노동자를 위해 단독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운영하는 다른 은행들과 차별화된 형태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17개 시도를 순회하며 저출생 해법 발굴에 나섰을 때, 남동사랑어린이집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중소기업 근로환경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업은행의 고집으로 0세반도 운영하고 있다. 전국 어린이집 10곳 중 4곳은 0세반 개설이 안 돼있다. 비용을 이유로 운영을 다들 꺼리기 때문이다. 유인숙 IBK남동사랑어린이집 원장 역시 설립 초기 0세반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대3으로 높다는 점 등 여러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은행의 생각은 달랐다. 윤수경 IBK행복나눔재단 과장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경우 아이를 낳고 1년을 다 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출산하고 6개월~7개월 뒤 바로 복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중소기업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해 0세반은 꼭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학부모 만족도가 가장 높은 건 안전한 먹거리다. 1식 4찬으로 푸짐하다. 쿠키뉴스가 남동사랑어린이집을 방문한 날 점심 메뉴는 백미밥, 도토리묵국, 닭살허브구이, 새송이버섯버터볶음, 궁채나물과 김치였다. 급식비 예산을 법적 기준(1인당 2000원 수준)의 2배가 넘는 5000원대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남동공단 내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이진영(42·여)씨는 첫째를 1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보낸 데 이어, 둘째도 남동공단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이씨는 “식재료를 한우, 유기농 등 좋은 것만 쓰신다. 석식을 제공하는 것도 정말 만족스럽다”면서 “어린이집 덕분에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이 겪는 ‘먹태기’(먹는 권태기의 줄임말로 아이들의 식욕이 떨어지는 시기를 뜻하는 말)가 한 번을 안 왔다”고 웃었다.  

유인숙 IBK인천남동사랑어린이집 원장. 사진=박효상 기자

근로자 원해도 사측이 컨소시엄 꺼리기도…“더 많은 아이들 누렸으면”

유 원장은 낮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어린이집의 자랑으로 꼽았다. 남동사랑어린이집 현원은 45명, 교직원은 19명이다. 일례로 만 3세의 법적 교사 대 아동 비율은 1:15인데 남동사랑어린이집은 1:5에 불과하다. 유 원장은 “야외 활동을 나가면 교사 한 명이 양손에 한 명씩 아이들 손을 잡고 다닐 수 있을 정도”라면서 “다른 어린이집에서 부러워 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좋은 어린이집이 많아져야 한다. 좋은 어린이집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인적자원이 필수”라며 “정부가 지원하는 처우개선비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가 차등이 있는데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근로자가 원해도 사측에서 어린이집과 컨소시엄을 맺기를 꺼려해 자녀를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린이집이 고용보험기금으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기에 고용보험에 가입된 업체여야 컨소시엄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이 체납되는 등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아 사측에서 이를 주저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원아 수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도 고민이다. 중소기업 특성상 경기를 크게 탄다. 최근 공단 내에서도 문을 닫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구미공단 내부에 있던 또 다른 어린이집은 지난 2월 문을 닫았다. 정원 미달 때문이다. 최유정 IBK구미사랑어린이집 원장은 “작년까지는 정원을 20명대로 유지하다가 올해 10명대로 떨어졌다”며 “아이들이 대부분 첫째다. 둘째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최근 한 학부모가 ‘이직해서 이제 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어요. 우리 아이 선택받은 거 맞죠’라고 하더라.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에 나선 기업은행에 정말 감사하다”라면서 “상생형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좋은 환경, 질 높은 교육을 더 많은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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