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앞 텐트 치고 집 옮기고…난임 치료도 ‘뺑뺑이’ [난임일기④]

병원 앞 텐트 치고 집 옮기고…난임 치료도 ‘뺑뺑이’ [난임일기④]

기다림은 익숙하다. 이름 있는 병원이라면 만사 제치고 찾아간다. 인근에 텐트를 치고 밤샘을 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 병원에 들어가 집에 돌아오면 늦은 저녁이다. 한 번에 200만원 이상 지불해야 하는 시술비가 벅차 지원금을 더 준다는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한다. 그나마 일련의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일들은 참아볼 수 있지만, 거듭되는 실패는 마음을 깎아내려 견디기 어렵다. 임신만 된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우린 ‘난임 부부’다. 치료 과정은 우리에게 긴 ‘여정’이다. 어떤 이는 ‘마라톤’에 비유한다. 우리 부부의 여정을 쿠키뉴스를 통해 전한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난임 환자들은 더 좋은 병원에서 시술받기 위해, 더 훌륭한 의사를 만나기 위해, 또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병원 셔틀’을 돌아요.” (박경하·가명·40대)


전국의 난임 가족들이 수백㎞ ‘원정길’에 나선다. 날을 잡아 시간을 쪼개 여러 병원을 예약하고, 치료 전날 근처 숙소에서 묵는다. 병원 앞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급기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난임 시술 지원 혜택이 더 많은 지역으로 집을 옮긴다.

지난 2022년 한 해에만 약 14만명이 난임 시술을 받기 위해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같은 해 불임·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이 37만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시술 가족은 증가할 전망이다. 난임 병원은 수도권에 쏠려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난임 시술 의료기관은 지난 3월 기준 총 269곳인데, 이 중 서울이 21.9%(59곳), 경기가 20.1%(54곳)를 차지한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시험관 시술) 두 시술을 모두 할 수 있는 병원은 전국에 154곳이 있다. 이 역시 45.5%가 서울과 경기권에 포진해 있다. 인천을 포함하면 수도권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지역의 치료 인프라는 열악한 편이다. 지난 3월 기준 강원의 복지부 지정 난임 시술 의료기관은 7곳에 불과하다. 충남은 12곳, 충북 8곳, 경남 18곳, 경북 10곳, 전남 5곳, 전북은 12곳이다. 세종과 울산, 제주는 각각 3곳, 5곳, 4곳에 그쳤다.

난임 가족들은 이름이 잘 알려진 이른바 ‘메이저 병원’으로 향한다. 입소문을 탄 난임 전문병원들이 대부분 서울에 몰려있는 탓에 상경을 택한다. 시간, 체력,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다. 박경하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KTX를 타고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하는 가족이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10차수 넘게 치료를 이어가는 집도 있다”며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주는 의사를 찾느라 ‘병원 뺑뺑이’를 도는 것은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난임 시술 의료기관 지정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치료 방향이 결정되는 난임 진료 특성상 정확한 검사가 필수적이다. 검사를 통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견되면 치료 방법을 바꾸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시술 과정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급히 병원을 찾기도 한다. 난임 가족들은 치료 실패를 거듭하며 수차례 병원을 옮겨 다닌다.

지난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난임 부부 지원정책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개선 과제’에 따르면 난임 시술을 받은 가족 653명 중 65.4%가 다니던 병원을 옮긴 경험이 있다. 전원 경험률은 난임 진료 기간이 길고 시술 횟수가 늘어날수록 높아졌다. 전원 횟수가 5회 이상이라는 응답자는 전체 전원 경험자의 10.8%를 차지했다. 전원 경험자의 절반 이상(54.6%)은 현재 거주 지역 밖에 있는 의료기관으로 옮겼다. 

특히 거주 지역이 강원·제주인 경우 타 지역으로 병원을 옮기는 비율은 80%에 달했다. 옮겨간 지역은 서울이 55.4%로 가장 높았다. 임신이 잘 된다고만 하면 그곳이 어디든 난임 부부들의 성지가 된다. 이들은 의료기관 선택 시 우선 고려 사항으로 ‘임신 성공률’(41.7%)을 꼽았다. 뒤이어 ‘의료인 평판·인지도’ 16.2%, ‘집과의 거리’ 10.4%, ‘주변인 평판·인지도’ 6.9%, ‘의료기관 대외적 인지도’ 6.7% 순으로 나타났다.

난임 부부들의 절실함을 반영하듯 난임 병원 ‘오픈런’ 혹은 ‘노숙런’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송수연 세종충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아이를 갖기 위해 작은 희망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면서 “난임 클리닉이 대도시에 집중돼 있고 소도시엔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운 분들 가운데 병원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진료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천차만별 난임 지원책에 울고 웃는다”

난임 부부들이 옮겨 다니는 건 병원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원을 많이 해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난임 지원 정책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됐다. 지난 2021년까지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은 국비 50%와 지방재정 50%의 비율(일부 지자체는 국비 30%·지방재정 70%)로 운용됐다. 2022년부터 지방으로 사업이 이양되면서 사실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지방 이양 사업 전환 보전금 배분이 종료되는 2026년부터는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확보해 지원 사업을 운영한다.

경북 경주의 한 유명 난임 한의원 앞에 텐트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독자 제공

치료비 지원 소득 기준은 폐지됐지만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지원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7개 시도가 난임 부부 지원에 편성한 예산은 2022년 1591억원, 지난해 1912억원이다. 정부가 지자체에 주는 지방 이양 사업 전환 보전금과 각 지자체가 자체 편성한 금액을 합산한 것이다. 서울시는 2022년 231억원에서 2023년 560억원으로 예산을 크게 늘렸다. 반면 대구시는 79억원에서 57억원으로, 부산시는 151억원에서 119억원으로 각각 줄였다.

시술 중단이나 실패 이후 지원 여부, 시술비 상한액 규모 등도 지역마다 다르다. 전남은 난임 시술 지원 횟수를 모두 소진한 부부들에게 최대 150만원을 소득과 횟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한방 난임 치료 지원금도 나이 제한 없이 180만원씩 준다. 강원 양구군은 다음 달부터 횟수와 상관없이 최대 300만원까지 시술비를 지원한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시술 1회당 지원 한도를 11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확대하고, 생애 최초 난임 진단 검사비를 최대 20만원까지 늘렸다.

난임 부부들은 지역별로 차이가 큰 지원 혜택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시험관 시술 15차수를 넘긴 김지혜(가명·30대)씨는 “시술 지원금 지급 규모가 큰 지역에 사는 부부들이 부럽기만 하다. 사비를 털어 시술을 이어가는 고차수 가족들은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지역별 지원금 차이 때문에 지원금을 더 주는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각 시군마다 다른 난임 정책에 우리들은 울고 웃는다. 아이를 갖는 일을 돈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갖는 기회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지만 우리 부부는 성공할 때까지 시술을 계속할 생각이다. 나라가 적극 도와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차수 지원 확대해도 추가 재정 소요 적어”

전문가들은 첫째 아이에 한해 난임 시술을 무제한 지원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고 봤다. 시술 시도 자체가 아이를 낳으려는 의지를 증명하는 만큼 효과가 불분명한 저출산 지원책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 난임 시술 지원에 더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분석이다.

난임 시술 비용·횟수·소득 제한 없이 지원할 경우 드는 연도별 재정.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송 교수는 “재정이 충분하다면 무제한 지원이 고차수 환자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별 지원도 차이를 두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방식이 합리적일지에 대해선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난임 시술비용을 횟수·소득 제한 없이 지원하면 2023~2027년 5년간 9933억원, 연평균 1986억원이 든다. 2023년 한 해 동안 투입된 저출산 예산이 48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0.5% 수준이다.

주창우 서울마리아병원 부원장은 “전체 환자 규모로 따지면 시험관 시술이 20회 이상 가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체로 5회 안에 임신이 된다”라며 “고차수 난임 부부의 시술 지원 횟수를 늘려준다고 해서 추가적인 재정 소요가 많진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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