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0)
서약서 한 장이 던진 질문 “지방의회 변할 수 있을까” [취재진담]

서약서 한 장이 던진 질문 “지방의회 변할 수 있을까” [취재진담]

‘10원 빚도 없는 공천’ 이어 “외유·특권 끊겠다” 약속
조지연이 시작한 바람으로 새 정치 실험실 된 경산시

승인 2026-05-25 11:15:02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1일 오전.

국민의힘 경산시 당원협의회 사무실은 일찍부터 붉은 점퍼를 입은 후보들로 가득 찼다.

당협위원장인 조지연 국회의원은 출정식을 앞둔 후보들에게 몰래 준비해 둔 서약서를 내밀었다.

‘시민과의 약속, 깨끗한 지방정치 실천 다짐 서약서’에는 ‘외유성 해외출장 금지, 관행적 특권 내려놓기’가 적혀있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1분 1초가 급한 후보들은 직접 이름을 쓰고 서명했다.

당선된 것도 아닌 후보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필승의 전략보다, 표심을 얻을 공약보다 먼저 나온 단어가 ‘특권 포기’였으니.

조지연 의원은 그동안 공천·선거과정 전반에서 ‘시민 눈높이 정치’를 내걸고 ‘책임정치 실천’을 외쳤다.

그는 “공천 과정에서 단 10원의 빚도 지지 않았다”며 금전·사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공천을 강조해왔다.

국회의원 당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았다는 점 역시 특권 사용을 스스로 제한한 상징적 사례로 회자된다.

여야를 막론한 출판기념회 관행을 “편법 정치자금 통로”라고 비판하며 출판기념회 금지법 발의를 주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조 의원이 이번에는 지방의회 외유성 출장과 특권 정치에 칼을 들이댔다.

전국 곳곳에서 지방의회 해외연수 비용 부풀리기와 관광성 연수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경산발(發) ‘무(無)외유·무(無)특권’ 선언은 지방정치 전반을 향한 일종의 압박이자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시민만 바라보는 책임정치’가 슬로건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시민들의 시선도 한층 매서워질 것이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변화의 성공 여부 역시 ‘초심’에 달려있다.

서약과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의정활동과 예산 심의 과정에서 외유성 출장 예산을 줄이고, 각종 특혜성 조례·관행을 정비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경산이 ‘새 정치 바람의 진원지’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이번 서약이 일회성 퍼포먼스가 아니라 장기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경산은 한국 지방정치의 작은 실험실이 되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의 무빚 선언, 해외출장 셀프 금지, 출판기념회 제도 손질, 그리고 지방의회의 외유·특권 포기 서약까지, 정치개혁의 여러 퍼즐이 한 도시 안에서 맞춰지고 있다.

경산시에서 시작된 ‘새 정치’ 바람이 지역의 벽을 넘어 전국으로 번질 수 있을지, 6·3 지방선거 이후 이 실험의 성적표에 시선이 쏠린다.
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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