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6일 (6)
병원 밖으로 나가는 청진기, 재택의료가 필요하다 [병원이 집으로]

병원 밖으로 나가는 청진기, 재택의료가 필요하다 [병원이 집으로]

박건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

승인 2026-04-27 06:00:05 수정 2026-04-30 08:53:35
박건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

“선생님이 소개시켜주신 재택의료센터 의사 분이 오셨어요. 원하는 건 다 해주고 가셨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요?”
 
오랫동안 치매에 이어 척추협착으로 인한 요통을 안고 있고, 걷지 않아서 허벅지 근육이 말라있던 환자였다. 그러니 보호자가 병원에 한 번 모시고 오려면 난리가 난다. 집을 나서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온 뒤엔 다시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한다. 순번을 기다렸다가 진료를 본 후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 집에 돌아가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는 불평이 많다. 나 또한 2년 넘게 보호자의 말만 듣고 대리처방을 해 주면서 혈액검사나 인지검사 등을 못하면서 약만 드리고 있었다. 대학병원 의사의 어찌할 수 없는 여건에 대한 자괴감이 들 때 환자가 사는 동네에 재택의료센터가 생겼다. 찾아가는 진료가 가능해지자 상황이 변했다. 그리고 이 스토리는 해피앤딩 중이다.

과연 재택의료는 필요한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다. 이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병을 안고 사는 인구의 비중이 늘고, 병원에 찾아가기도 힘든 노인 환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매년 15만 명씩 불어나는 장기요양보험 사용자의 급증은 병원에 못 가는 의료 취약자에 대한 복지적 대안이 아닌 의료적 대안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단 의료기관에 가야 어떤 의료적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하기엔 융통성이 너무 떨어진다. 병의원에 환자가 못 오면 의료인이 찾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또 급성기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항암치료를 받은 경우, 뇌졸중 등으로 인해 마비가 온 환자들이 퇴원해 집으로 갈 방법도 없다, 병원에서는 빨리 퇴원하라고 하는데 퇴원해도 요양원을 가야하는 처지다. 안심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만 퇴원 후가 불안하다. 퇴원 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 집에서 욕창치료, 재활치료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환자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병원과 재택의료는 상호보완 관계에 있으며,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재택의료가 필요한 이유는 더 근본적인 면에 있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환자가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병원에 오지 못하고 보호자가 대진을 하는 사례가 많다. 병이 악화되거나 보호자의 정보가 부정확하다는 판단이 들 땐 직접 환자의 집에 가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환자의 집을  방문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진단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간병의 정도를 가늠해 다시 간병 교육을 할 수 있다. 주변의 도움을 찾아드릴 방법도 떠오른다. 진료실에 있을 때보다 다양한 해결책이 공유되고 환자 및 보호자의 치료 순응도 역시 높아진다. 멀어져간 환자와 의사의 관계도 당연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진료실 매너리즘에서 벋어나 한 개인의 삶, 그의 공간에 들어가 봄으로써 질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 동맹이 더욱 강력해지는 계기를 갖게 된다.
  
재택의료는 왜 활성화되지 않았을까.

의료법 제33조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부분이 방문진료를 생각하는 의사 입장에서 다소 걸리는 부분이다. 그러나 의사가 응급환자를 보거나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진료를 해야 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으면 방문진료가 가능하다는 예외규정이 있어 이 규정으로 활동한다면 법적 문제는 없다.
 
그런데 막상 방문진료에 대한 진료비 수가가 책정돼 있지 않다. 진료실 밖에서 진료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고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 지불 근거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의원급 의사들에 한해 방문진료 시범사업이라는 편법으로 일부 방문진료가 허용되고 있다.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인 재택의료센터가 생기고, 장기요양보험에서 방문 수가를 일정 부분 보조하고 있으나 건강보험 수가에는 반영돼 있지 않다. 시범사업이라는 영역에 머물러 있는 만큼 행정적 낭비가 많고, 기관 안에서 진료하는 것이 재택의료를 하는 것보다 수익성이 나은 상태다. 진료실을 박차고 나오게 할 유인 요인이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참여하는 의사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서비스에 대한 표준이 잡혀있지 않고, 서비스 개발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의대생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아 지속가능성을 두고 염려가 이어진다. 더욱이 국민은 의료인이 집으로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낯설어 한다. 교육과 홍보 문제도 심각하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의료 혜택을 못 받는 구조, 그 구조에서 소외되는 노인 및 장애인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 수요를 무시할 수 없다. 의료난민의 열악한 생활은 삶의 희망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의사가 다가가야 한다.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건물을 크게 짖는 병원이 잇따라 들어서는 가운데 환자가 의료진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가벼운 병원도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올해 3월 돌봄통합법이 실시되며 지역사회 재택의료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현 상태는 너무나 불안정하다. 이에 대한 고민을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국민이 함께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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