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8일 (1)
‘마약 노출 피해자, 낙인 대신 도움을’…변기환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 인터뷰 [THE OVEN]

‘마약 노출 피해자, 낙인 대신 도움을’…변기환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 인터뷰 [THE OVEN]

비자발적 마약 노출에도 자신 탓하는 피해자들
자책과 낙인이 도움 요청 막아
전문기관 상담·가족 이해·회복 인프라 필요

승인 2026-05-29 06:05:03
변기환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비자발적 마약 노출 피해자에게 낙인보다 상담과 회복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혜미 PD
변기환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비자발적 마약 노출 피해자에게 낙인보다 상담과 회복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혜미 PD
모르는 사람이 건넨 술을 마셨다. 처음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주변에 사람들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다음 날 눈을 떴지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약물 노출이 의심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생긴 일 아닐까.’ 변기환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장은 이 지점을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 꼽았다.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닌데도, 마약에 노출됐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조심하지 못해 피해를 입었다’고 받아들이는 거죠. 피해 사실을 숨기면 도움을 받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강남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지난해 11월 문을 연 강남권 최초의 중독관리 전문기관이다. 강남구보건소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의 위·수탁 협약으로 운영한다. 마약류, 알코올, 도박,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의 예방과 치료, 재활을 지원한다. 센터를 이끄는 변 센터장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변 센터장이 현장에서 주목하는 비자발적 마약 노출의 가장 큰 문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술자리나 클럽, 파티처럼 음주가 함께 이뤄지는 공간에서는 몸의 이상 반응도 술 때문이라고 넘기기 쉽다. 열이 나거나 어지럽고 구토가 나도 마약을 의심하기보다 ‘오늘 술이 안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도 약물 노출이 아닌 취기로 받아들인다. 피해자는 기억이 끊긴 탓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 도움 요청이 늦어지는 이유다.

피해 이후의 반응은 청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학교를 나가지 않거나, 반대로 더 거칠게 밖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달라도 밑바닥에는 같은 감정이 있다. 자기 처벌이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모두 자기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상담과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그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약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 과정은 단순히 약을 끊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달라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상담기관에 연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족 역시 마약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변 센터장은 자녀를 꾸짖거나 낙인찍는 방식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길이 더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아이를 낙인찍어버리면 갈 데가 없어집니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됩니다. ‘네 잘못만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는 가족도 중독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했다. 가족 중 암 환자가 생기면 보호자가 병을 공부하듯, 마약·알코올·도박 중독 역시 주변 사람이 이해해야 재발을 막고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 청년을 이해하는 대신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면,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마약 노출 이후의 회복은 단약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의 이해와 사회 복귀를 돕는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인터뷰 중인 변기환 센터장. 정혜미 PD
마약 노출 이후의 회복은 단약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의 이해와 사회 복귀를 돕는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인터뷰 중인 변기환 센터장. 정혜미 PD
회복은 단약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약에 노출된 이후 일상을 회복하려면 혼자 버티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약물과 연결된 관계를 끊어야 하고,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거나 SNS를 멀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변 센터장은 이것이 청년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회복하려면 마약을 할 때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SNS를 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그것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약 노출 이후에도 상담과 치료는 이어진다. 회복의 길은 멀다. 입원 치료 이후 병원에 계속 머물 수도, 집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청년은 난감하다. 그들에게는 단약 기간을 이어가며 생활을 다시 세울 중간 회복 공간이 필요하다. 변 센터장은 병원 치료와 일상 복귀 사이의 공백을 메울 인프라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 나온 뒤 갈 곳이 없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퇴원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조금 더 회복하고 단약 기간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1~2년 정도 생활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는 청년 한 사람이 사회로 돌아오는 일은 한 사람만의 회복이 아니라고 했다. 청년이 다시 일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언젠가 또 다른 가정을 이루는 일까지 생각하면 한 가정이 되살아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센터와 같은 기관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간을 누군가 함께 통과해야 한다.

인터뷰 말미, 변 센터장은 청년들에게 당부했다. 먼저 도움을 요청하라고. 혼자 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좋지 않다.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숨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 자신을 더 해치게 됩니다. 주변에 말하고,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가족에게도 ‘이 문제에서 빠져나오고 싶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변 센터장은 사회를 향한 메시지도 남겼다. 마약을 경험한 청년을 과거의 한 장면으로만 규정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마약했던 애라고 낙인찍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은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사회로 돌아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포용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THE OVEN은 보도를 넘어, 실제 사회 변화를 만들기 위해 쿠키뉴스와 브랜드가 함께하는 사회 공헌 프로젝트입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마약 검출 키트를 개발한 디엑스젠코리아와 함께 ‘청년 마약 노출 예방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관련 기사와 현장 기록은 THE OVEN 시리즈를 통해 이어집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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