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결국 철수한다. 2008년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연간 ‘1만대 클럽’을 열었던 대표 수입차 브랜드가 전동화 전환기에 방향을 잃고 23년 만에 사업을 접게 됐다. ‘잘 만든 차’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격과 상품 경쟁력에서 뚜렷한 선택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혼다코리아는 23일 ‘혼다코리아 사업 운영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고 2026년 말을 끝으로 국내 자동차 판매 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모터사이클 사업은 유지한다. 2001년 모터사이클 사업으로 한국에 진출한 뒤 2004년 어코드와 CR-V를 판매하며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지 23년 만이다. 올해 3월까지 국내 누적 판매량은 약 10만8600대다.
혼다의 추락은 수치로 확인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혼다코리아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1951대로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1월 104대, 2월 23대, 3월 84대 판매에 그치며 1분기 판매량은 211대에 그쳤다. 월평균 100대 수준으로, 사실상 시장 영향력을 상실한 셈이다.
‘1만대 클럽 재진입’ 꿈꾸던 혼다…노재팬 이후 회복 실패
혼다의 부진은 2019년 6월 이지홍 대표 취임 이후 본격화됐다. 이 대표는 당시 취임 간담회에서 “연간 1만1000대 판매로 ‘1만대 클럽’에 재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 흐름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노재팬 여파 이후 토요타 등 일본 브랜드는 점차 회복세를 보였지만, 혼다는 반등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혼다는 2019년 8760대를 판매한 이후 2020년 3056대로 급감했고 2021년 4355대, 2022년 3140대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이러한 부진을 단순히 불매운동 영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업계에서는 혼다의 제한적인 상품 포트폴리오를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국내 판매 모델이 어코드, CR-V, 오딧세이, 파일럿 등 일부 차종에 그친 데다, 전동화 대응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일부 차종에 국한됐고, 순수 전기차 라인업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었다.
“잘 만든 차” 이미지에도…가격·체감가치 괴리
혼다 차량은 오랜 기간 ‘잘 만든 차’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엔진과 파워트레인 완성도, 내구성 면에서 강점이 있다는 인식도 강했다. 다만 이러한 강점이 가격을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됐는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현재 주요 모델 가격은 대부분 5000만원대를 웃돈다. 오딧세이는 6000만원대, 파일럿은 700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가격대만 놓고 보면 프리미엄 브랜드와 맞붙는 구조다. 그러나 브랜드 위상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다르고, 가격 경쟁력은 토요타 하이브리드나 테슬라 일부 모델과 비교해 뚜렷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품 구성에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최근 출시된 CR-V 부분변경 모델은 2열 열선시트 적용을 주요 변화 중 하나로 내세웠지만, 한국 시장에서 2열 열선시트는 이미 흔한 편의사양에 가깝다. 가격은 높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만한 차별화는 약했다. 이에 따라 혼다가 가성비와 프리미엄 사이에서 포지션이 모호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장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이후 한국 수입차 시장에는 테슬라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고, 지난해에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까지 진입했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이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으로 라인업을 다변화하는 동안 혼다의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본사도 전기차 전략 재조정…한국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일본 혼다 또한 영향력이 낮아지고 있다. 혼다는 2025년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 최대 6900억엔의 적자를 냈다. 혼다가 연간 적자를 낸 건 69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소니와 합작한 소니혼다모빌리티(SHM)는 지난 3월 아필라(AFEELA) 1과 후속 모델의 개발 및 출시 중단을 발표했다.
북미에서 추진하던 전기차 3종 개발도 중단된 상태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전기차 투자 속도와 수익성을 재점검하는 흐름 속에서, 판매 규모가 작은 한국 자동차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완전 철수는 아니다”…서비스는 지속
다만 혼다코리아는 법인 철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동차 판매 사업은 종료하지만 모터사이클 사업은 유지하고, 기존 자동차 고객을 위한 서비스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닛산 케이스와는 다르다”며 “법인은 그대로 존재하고, 판매사업 종료 이후에도 서비스 부문은 지속된다”고 밝혔다.
자동차 판매는 중단되지만, 기존 고객에 대한 사후 서비스는 별도로 유지된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자동차 제작·수입사는 동일한 자동차를 마지막으로 판매한 날부터 8년 이상 정비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해야 한다.
혼다코리아는 법적으로 요구되는 8년을 넘어 장기적으로 서비스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혼다코리아는 전국 18개 자동차 서비스 네트워크를 운영 중이며, 서비스센터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딜러사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준택 혼다코리아 자동차사업부 상무는 “자동차 판매 사업은 종료되지만, 기존 고객들을 케어하는 서비스 관점에서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충실히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