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 안으로 금융 기능이 들어오고 있다. 자금관리부터 입출금까지 금융 서비스를 ERP 안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ERP 뱅킹’을 통해 고객 밀착형 기업금융을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최근 ERP 시스템을 활용해 기업금융 심사와 자금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는 ‘ERP 뱅킹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기업 경영의 핵심 시스템인 ERP에 금융 기능을 결합해 한 화면에서 주요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별도의 은행 웹사이트 접속 없이 ERP 화면에서 곧바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두에는 신한금융그룹 계열 제주은행이 있다. 제주은행은 지난 2일 더존비즈온과 협력한 디지털 기업금융 특화 브랜드 ‘DJ뱅크’를 공개하고 ERP 데이터 기반 기업금융 모델을 선보였다. 대면 중심 절차와 서류 부담, 시간 지연, 정보 부족 등 기존 기업금융의 한계를 줄이고, 기업 업무 흐름 안에서 계좌 개설부터 자금 지원까지 이어지는 ‘완결형 금융’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희수 제주은행장은 “DJ뱅크는 기업의 업무 흐름 속에서 금융이 작동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ERP 데이터 기반 전략모형을 통해 리스크 식별은 더 정교하게 하고 기존에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우량 고객까지 발굴함으로써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을 함께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RP 뱅킹은 대안신용평가 고도화로 이어진다. 기존 재무제표 중심 신용평가의 한계를 넘어 매출, 재고회전율 등 ERP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데이터를 반영할 수 있게 되면서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우량 고객을 발굴하고 잠재 위험군을 식별하면서 생산적금융 지원을 활성화하고, 리스크 관리 역시 고도화한다는 구상이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ERP뱅킹은 기업의 실제 업무와 금융을 연결해, 과거의 데이터로 현재의 기업을 평가해온 기존 기업금융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오랜 시간 고민해온 사업”이라며 “제주은행이 이러한 새로운 기업금융 모델의 출발점이 되어 지역은행의 한계를 넘어 더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타 은행들도 ‘ERP 뱅킹’ 환경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기업고객이 ERP 시스템에서 별도의 은행 채널 없이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NH임베디드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0월 말 핑거와 삼일회계법인이 공동개발한 ERP 플랫폼 ‘파로스’와 ‘스텔라’에 임베디드뱅킹을 구축했다. 지난달 18일에는 ERP 전문기업 아이퀘스트와의 업무협약에 따라 이달부터 ‘얼마에요ERP’를 사용하는 기업고객은 ‘NH임베디드플랫폼’을 통해 ERP 내에서 계좌조회부터 자금이체, 급여이체 등 기업뱅킹 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KB국민은행도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ERP뱅킹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에서 기존의 임베디드영업부를 ERP사업부와 플랫폼제휴사업부로 재편했다. 지난달 12일에는 관세사 전용 ERP 운영사인 옵스네트워크와 ‘관세ERP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데이터 연계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플랫폼 협력 등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향후 양사 간 시스템 연동을 통해 수출입 결제 프로세스 고도화, 관세사 특화 비대면 금융상품 출시 등도 협업한다는 구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ERP뱅킹 서비스는 기업의 ‘경리’와 같은 역할”이라며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금 유치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ERP 시스템을 통해 고객들이 따로 지점을 방문할 필요 없이 기업 자금을 관리하는 전담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며 “이를 기반으로 은행과 기업 간 파트너십 구축과 다양한 사업 확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