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콘텐츠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시즌3으로 5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작품 공개 4일 차인 3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동혁 감독은 “한때 나를 우쭐하게 했지만, 또 다시 겸손하게 만든 작품”이라며 “감사하면서도 허전하고 아쉽다”고 찬란했던 여정을 돌아봤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이하 ‘오징어 게임3’)은 자신만의 목적을 품고 다시 참가한 게임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고 만 기훈과 정체를 숨긴 채 게임에 숨어들었던 프론트맨, 그리고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마지막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시리즈의 마지막 시즌이다.
황 감독은 시리즈를 매듭지은 소감을 묻는 말에 “홀가분하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즌1 때는 기대감이 없는 상태로 시작했는데 너무 큰 성공을 거뒀어요. 그러면서 시즌2~3에 대한 기대가 커지니까 부담감도 컸죠.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그래도 언제 이렇게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을 만들어보겠어요.”
‘오징어 게임3’은 이전 시즌들의 위상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공개 하루 만에 플릭스 패트롤이 순위를 집계하는 9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성적과 별개로 결말을 포함한 만듦새에 대해서는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고 있다.
황 감독은 “시즌1 때는 기대가 없었으니 신선하기도 하고 게임이나 사회적 메시지 모두 만족시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운을 뗐다. “시즌2부터는 원하시는 것들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게임을 좋아했다면 더 재밌는 게임을 원하고, 사회적 메시지에 공감했다면 철학적인 깊이를 원하는 거죠. 캐릭터를 좋아했다면 또 그 부분을 기대했을 거고요. 기대들이 다 다르다 보니 충족되는 분들도 있고 배반당한 분들도 있어요. 이해는 가요.”
황 감독은 그 중 전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했다. 미래세대를 위한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성세대와 가진 자들이 희생을 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속편의 출발점을 전했다.
게임장에서 태어난 준희(조유리)의 아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난 캐릭터라는 설명이다. “미래세대의 심벌이자 양심 같은 존재로 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한 해피엔딩보다는 기훈이 아기를 위해 희생하는 결말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죠.”
반란에 실패한 데 이어 죽음으로 아기를 지키는 기훈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에는 “애당초 히어로물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기훈은 그런 캐릭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별한 능력도 없잖아요. 최선의 영웅적인 행동이 마지막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직하게 아이를 살려내려는 모습이요. 답답하더라도 세상을 조금씩 바꾸려는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어요.”

이처럼 작품의 메시지 그 자체인 기훈은 배우 이정재를 통해 글로벌 시청자를 만났다. 황 감독은 기훈으로서 세 시즌을 이끌어준 배우 이정재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기훈은 ‘오징어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인데 열정적으로 표현해 줬죠. 특히 시즌2~3을 촬영한 1년 내내 찐 채소만 드셨어요. 정신병에 걸린 느낌이 들 정도로 갈수록 마르고 퀭해지셨어요. 시즌1 때는 식사나 술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는데, 시즌2부터는 밥도 차에서 따로 드셨어요. 극한의 다이어트를 오래 지속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심마저 들었어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황 감독은 이정재와 달리 의도치 않게 체중을 감량하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몸무게가 59㎏까지 빠졌어요.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충격을 받았죠. 일단 쉬고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곤하면 잇몸에 문제가 생겨서 치아도 2개를 더 뺐어요. 아직 임플란트도 못했어요. 제 이인데 몇 개 남지 않았네요.”
불어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가 빠질 정도로 치열하게 노력한 뒤에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 그리고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남았다. “처음 공개됐을 때 한국 언론 평이 안 좋았는데 갑자기 전 세계 1위가 되고 신드롬이 됐어요. 안 믿겨서 스스로 꼬집어봤다니까요(웃음). 많은 경험을 했죠. 에미상 시상식에서 수상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도 시달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작품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여야죠.”
작품 말미에는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딱지맨으로 등장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오징어 게임’ 미국판 버전이 제작된다는 설에 힘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황 감독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성기훈이 죽으면서 사건이 종결됐지만, 이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고 널리 퍼져 있어서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미국 버전은 공식적으로 들은 게 없어요. 요청이 들어온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요.”
시즌4 제작 여부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했다. 황 감독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 전달해서 이어가는 게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성기훈이라는 한 사람의 여정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 더 이상 나올 여지가 없어요. 다만 최 이사가 박 선장 집을 뒤질 때 낚시하다가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에 딱지남도 있고 프론트맨도 있어요. 이들이 현실에서는 무슨 사이일까, 언제 어떻게 찍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게 된다면 메시지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