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반열 오른 박정상 감독 “우승 비결은 영림프라임창호 든든한 지원” [쿠키인터뷰]

‘명장’ 반열 오른 박정상 감독 “우승 비결은 영림프라임창호 든든한 지원” [쿠키인터뷰]

영림프라임창호, 바둑리그 사상 최초의 챔프전 ‘퍼펙트 우승’ 신기록
창단 첫해 통합 우승도 2004년 한게임, 2006년 Kixx 이은 세 번째
박정상 감독 “믿고 따라준 선수단, 영림프라임창호 든든한 지원 덕분”

창단 첫해 통합 우승을 차지한 영림프라임창호 선수단이 ‘구단주’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과 우승컵을 들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주장 강동윤 9단, 박정상 감독,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 중국 용병 당이페이 9단. 이영재 기자

“촉박한 시간에 만들어진 신생팀임에도 구단에서 든든한 지원을 해주신 점이 우승 원동력이었다.” (박정상 영림프라임창호 감독)

바둑계 정통 ‘지도자’ 코스를 밟은 몇 안 되는 최정상급 프로기사인 박정상 9단이 한국 바둑 최고 무대인 ‘한국바둑리그’에서 ‘명장’ 반열에 올랐다. 국가대표 바둑 상비군 코치를 거쳐 바둑리그 명문 구단 한국물가정보 지휘봉을 잡았던 박 감독은 신생팀 ‘영림프라임창호’ 사령탑을 맡아 팀을 창단 첫해 통합 챔피언으로 등극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박정상 영림프라임창호 감독은 지난 9일 쿠키뉴스와 만나 “한두 명의 선수나 특정 인물에 의한 우승이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같이 일궈낸 우승이라는 생각에 더욱 뜻깊다”면서 “결승에서 퍼펙트 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다시 한번 이 공을 선수들에게 돌린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얘기대로, 영림프라임창호는 지난 2004년 처음 창설된 한국바둑리그 21년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 무패 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이번 시즌 영림프라임창호가 역대 세 번째로 이룬 ‘창단 첫해 통합 우승’ 또한 바둑리그 원년인 2004년 한게임, 2006년 Kixx(현재 GS칼텍스)에 이은 기록이다.

당시 바둑리그 기틀이 잡히기 이전인 초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나오지 않았던 대기록이다. 원년 시즌인 2004년 한게임 우승 멤버에 영림프라임창호 주장 강동윤 9단이 소속돼 있고(당시 2지명, 주장은 이세돌 9단), 2006년 Kixx가 우승할 때 박정상 감독이 선수(2지명, 주장은 최철한 9단)로 뛰었다는 점도 재밌다. 박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창단 첫해 통합 우승’을 해본 최초의 프로기사가 됐다.

선수로서도 코치로서도 열정 불태운 박정상, 감독으로도 최고의 반열에

2000년 프로 입단에 성공한 박정상 감독은 2004년 SK가스배 신예프로 10걸전에서 우승하면서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았다. 세계대회에서 ‘이세돌의 라이벌’로 꼽히던 중국 구리 9단을 완파하면서 바둑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2006년 제19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이창호 킬러’로 위명을 떨치던 중국 저우허양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메이저 세계 타이틀 홀더’ 반열에 올랐다.

선수로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은 박 감독은 이후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로서 ‘지략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동시에 방송 해설을 통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KBS바둑왕전 해설을 맡은 이후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대결’ 당시 ‘공중파 해설’로 바둑계 외부의 일반 팬들에게도 유명세를 탔고, 2022년부터 바둑리그 감독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박 감독은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KB국민은행 바둑리그 감독을 맡고 포스트시즌에 100% 진출했다”면서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후회 없는 승부를 펼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22-2023시즌부터 현재까지 바둑리그 포스트시즌에는 항상 박 감독이 지휘한 팀들이 있었다. 신생팀 영림프라임창호 사령탑을 맡은 이번 2024-2025 시즌에는 순위표 최상단에서 챔피언 결정전을 치렀다는 점, 그동안 경험으로 박 감독의 ‘내공’ 역시 더욱 깊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박정상 감독은 “구단주이신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팀에서 용병 섭외와 운영비 등 많은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셨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박 감독은 “저희 팀에는 상대 팀 ‘주장 및 용병’ 선수에게 승리할 때 지급하는 특별 수당, 즉 ‘에이스 저격 수당’이 있었다”고 숨겨진 황금주머니 하나를 풀었다.

신생팀 영림프라임창호 지휘봉을 잡은 박정상 감독이 2024-20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선수선발식을 마친 후 서울 금천구 쿠키뉴스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다음 시즌도 있기 때문에 다른 팀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가 공유되면 곤란하다”고 너스레를 떤 박 감독은 “이번 시즌 ‘에이스 저격 수당’을 받기 위해 상대 팀 주장이나 용병과 대국한 선수들은 더욱 힘을 내서 경기에 임했다”면서 “저희 팀이 주장-용병 저격률이 가장 높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쿠키뉴스에서 이번 시즌 바둑리그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영림프라임창호가 정규시즌 14라운드 동안 상대 주장과 용병을 ‘저격’한 횟수는 무려 11번에 달했다. 강동윤 9단이 세 번의 ‘주장 맞대결’에서 박정환·김명훈·원성진 9단을 제압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번 시즌 ‘주장 킬러’로 명성을 떨친 박민규 9단이 변상일 9단에게 두 번, 김명훈 9단에게 한 번, 중국 용병 판인 8단에게 한 번 등 도합 4번 승리를 거뒀다. 3지명 송지훈 9단 또한 원성진·신민준 9단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팀 승리를 견인했고, 4지명 강승민 9단 역시 안성준·신민준 9단을 꺾는 개가를 올렸다. 

이런 흐름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이어졌다. 정규시즌 4위로 출발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연일 명승부를 펼치면서 올라온 마한의 심장 영암의 기세는 챔프전 시작부터 바로 꺾였다. 영림프라임창호 2지명 박민규 9단이 상대 전적 1승10패로 절대 열세였던 영암 주장 안성준 9단을 챔피언 결정전 1차전 1국에서 격침했기 때문이다. 이어진 2국에선 상대 용병 쉬하오훙 9단을 영림프라임창호가 자랑하는 ‘특급 용병’ 당이페이 9단이 제압하면서 ‘승리 공식’이 작동했다. 이날 대미를 장식한 3지명 송지훈 9단은 상대 2지명 설현준 9단을 꺾고 팀 승리를 확정한 이후 “2차전도 승리해서 황복현 회장님께 우승컵을 들고 찾아뵙겠다”는 인터뷰를 남겨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시즌 KB국민은행 바둑리그 마지막 경기가 된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는 ‘14년 만의 다승왕’에 오른 주장 강동윤 9단이 영암 주장 안성준 9단과 1지명 맞대결을 가져온 게 주효했다. ‘특급 용병’ 당이페이 9단이 상대 2지명 설현준 9단을 제압했고, ‘해결사’ 박민규 9단 또한 최종 3국에서 상대 전적 열세였던 영암 3지명 박영훈 9단에게 승리하면서 1·2차전 모두 3-0, 퍼펙트 우승 신화가 완성됐다.

영림프라임창호 3지명 송지훈 9단(오른쪽)이 챔피언 결정전 1차전 직후 인터뷰에서 공언했던 꿈이 이루어졌다. 송 9단은 바둑리그 우승컵을 들고 ‘구단주’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을 찾았다. 이영재 기자
영림프라임창호 선수단,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창단 첫해 통합 우승의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구단주’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이 우승컵을 번쩍 들었다. 이영재 기자

치열한 훈련으로 이뤄낸 성과…단합된 팀워크가 우승 원동력

겉으로 봤을 때는 신기할 정도로 큰 어려움이 없는 우승으로 보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실제로 6라운드가 끝난 시점에는 팀이 2승4패로 하위권을 전전하면서 박정상 감독의 속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당시를 회상한 박 감독은 “100% 본심은 아니었다”면서도 “우리가 개인승수가 많은 ‘두터운 2승4패’니까, 7승7패여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겠지”라고 선수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반기 마지막 라운드인 7라운드를 승리한다는 전제로, 후반기에 ‘4승3패’ 정도는 하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 얘기를 들은 선수단은 박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채찍’을 가했다. 2지명 박민규 9단과 3지명 송지훈 9단은 “감독님 무슨 말씀이신가요?”라고 반문하며 “우리는 남은 라운드를 다 이겨서 1등으로 올라갈 겁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박 감독은 “선수들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그래. 너희 말이 맞다. 우리 전승하자”라고 각오를 다졌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영림프라임창호는 이후 다른 팀이 된 듯 신들린 5연승을 질주하면서 1위에 올랐고, 챔피언 결정전 등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도합 9승1패의 성적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3-2 스코어 승부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6라운드(2승4패) 이후 영림프라임창호는 승리할 때 3-0, 3-1 오직 두 스코어로만 이겼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영림프라임창호가 바둑리그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 퍼펙트 우승(3-0, 3-0)’을 차지한 것도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을까.

그렇다고 노력 없이 결기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다. 선수단을 담금질하기 위해 박정상 감독은 중국 용병 당이페이 9단의 입국을 하루 당겨 팀 훈련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일정이 맞지 않을 때는 다른 기사를 초청해 함께 훈련하도록 한 적도 있었다.

박 감독은 “이번 시즌 10초 피셔로 시간이 바뀐 것에 적응하는 것이 시즌 내내 숙제였다”면서 “바둑리그와 동일한 조건의 실전 대국 위주로 훈련했다”고 말했다. 당이페이 9단이 합류하지 못했을 때는 팀원이 5명이므로, 짝수를 맞추기 위해 ‘깜짝 게스트’로 박진솔 9단이 참여한 적도 있었다고. 박 감독은 “박진솔 9단은 이번 시즌 바둑리그에 뛰지 않는 선수들 중 가장 상위 랭커”라고 귀띔했다.

바둑계 대표 잉꼬부부로 잘 알려진 박정상 감독(왼쪽)과 김여원 캐스터. 이번 시즌 영림프라임창호 우승에는 운전기사·매니저·중국어 통역 등 1인 3역을 소화한 김여원 캐스터의 숨은 공로도 있었다. 이영재 기자

고마운 사람이 정말 많지만 꼭 언급해야 하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바로 박정상 감독의 아내 김여원 바둑캐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1년 결혼한 박정상-김여원 커플은 바둑계 대표 잉꼬부부로 잘 알려져 있다.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자 출신인 박정상 9단 만큼은 아니지만, 김여원 캐스터 역시 소싯적 연구생 생활을 한 것은 물론 각종 아마대회에서 출중한 기력을 선보인 준프로급 실력자. 최근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바둑계 중국통’ 중 한 명인 남편 박정상 감독보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도 갖추게 됐다.

박정상 감독은 “중국 용병 당이페이 9단이 한국에 왔을 때 아무래도 의사소통 문제가 있는데, 아내가 저보다 중국어를 훨씬 잘해서 함께 있을 때 소통이 더 원활했다”면서 “경기 전 당이페이 9단 픽업(호텔→대국장)부터 경기가 끝나고 뒤풀이 후 선수단 귀가를 책임진 것까지 이번 시즌 내내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둑TV 중계진에서도 생방송 도중 몇 차례 언급했던 ‘당이페이 은폐 전략’과 관련된 일화도 소개했다. 이번 시즌 바둑리그에서 용병 선수들이 1국에 등판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시작과 동시에 출전하지 않더라도 검토실에는 항상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경우에는 상대 팀에서도 해당 용병이 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오더를 짜게 된다. 하지만 영림프라임창호는 달랐다. 검토실을 비추는 카메라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당이페이 9단이 갑자기 3국에 출전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오더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당이페이 선수가 1국 출전이 아닌 경우에는 시작 시간인 오후 7시부터 검토실에 대기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면서 “중간 중간 검토실 카메라를 비추면서 오더가 드러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검토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한 건 아내 김여원 캐스터였다. 박 감독은 “아내가 당이페이 9단 픽업 역할을 맡았다”면서 “당이페이 9단이 이미 도착했는데도 검토실에 들어오지 않고 한국기원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대국장으로 바로 온 경우도 있다”고 비밀을 밝혔다.

선수단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박 감독은 “오더를 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수들에게 상대 전적을 언급할 때도 있고, 이 선수와 대결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A가 아니라 B가 나갔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설득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면서 “선수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는 순간도 있었을 텐데 끝까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정상 감독은 “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100% 전력’을 다했다는 점”이라면서 “챔피언 결정전 2차전 직후 인터뷰에서 송지훈 선수가 저를 언급해줬는데, 간지러우면서도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한편으로는 제가 열심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알아줬구나 하는 마음도 있다”면서 “앞으로도 100%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한편 바둑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서의 첫걸음을 뗀 영림프라임창호는 벌써부터 ‘2연속 통합 우승’을 향한 준비에 돌입했다. ‘구단주’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이 다음 시즌에도 변함없는 지원을 약속하면서 ‘특급 용병’ 당이페이 9단 섭외에 직접 나섰다. 영림프라임창호 우승 기념 회식 자리에서 황복현 회장이 “다른 팀으로 가지 말고 다음 시즌에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자, 당이페이 9단은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하는 한 무조건 영림프라임창호에서 뛰겠다”고 화답했다. 신생팀 태풍의 주인공 영림프라임창호가 써내려갈 바둑리그의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영림프라임창호 ‘구단주’ 황복현 영림임업 회장(왼쪽)과 특급 용병 당이페이 9단이 다음 시즌에서도 함께 하자는 의미로 약속을 하고 있다. 이영재 기자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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