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사이 의료공백…‘의정 불통’이 부른 폐단 [의료 난맥⑥]

대립 사이 의료공백…‘의정 불통’이 부른 폐단 [의료 난맥⑥]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의료의 질은 떨어졌으며,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헤매고 암 수술을 미루는 등 피해가 쌓였다.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면서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자부하던 한국 의료는 휘청였다. 의료현장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탄식이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한숨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속가능성을 불어넣기 위해 짚어야 할 한국 의료의 민낯을 일곱 편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4월1일 서울 한 대학병원 로비에 설치된 TV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가 방송되는 가운데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곽경근 대기자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국민 불안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립이 지속될수록 의료공백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 구도에서 벗어나 양보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진다.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불안한 삶은 어느덧 일상이 됐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병원들의 파행 운영이 환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밝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가 의료현장에서 자리를 비운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상급종합병원 47곳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건강보험료를 청구한 6대 암 수술 건수는 4만8473건이다. 전년(2023년) 같은 기간 5만8248건보다 약 17% 감소했다.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인 6대 암은 위암, 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수많은 상담·신고가 접수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19일부터 올해 2월18일까지 1년간 상담 6260건이 접수됐으며, 이 중 피해신고서가 들어온 사례는 933건이었다. 그러나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1월31일까지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서 중 즉각대응팀과 관련된 것은 11건이었다. 즉각대응팀은 의료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으로, 11건 중 의료공백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례는 없었다.

환자들은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 조사기구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정부와 의료계는 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방치한 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 사태를 1년간 끌어오며 대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부와 의료계는 이제라도 환자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과 사망 문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하며, 그 핵심 해결책은 환자 피해 조사기구의 발족이다”라고 덧붙였다.

쌓일 대로 쌓인 불신…끊긴 ‘의정 대화’

의대의 교육 상황은 암울하다. 정부는 최근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동결하겠다며 학생들에게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다”면서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학생이 재학생의 휴학계 제출을 강요하는 등 학교 복귀를 막는 행위가 포착되기도 했다. 수련을 이어가야 할 전공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와 협박뿐”이라며 날을 세웠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사직 레지던트 5176명 가운데 58.4%인 3023명은 동네 병원에서 일반의로 근무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간의 협의는 진척이 없다. 의료계를 대표해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부당한 정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사에 대한 문책과 사과를 요구한다”며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등 의료개혁 과제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급기야 의협 내부에서는 ‘2024·2025학번을 동시에 교육하기 위해선 2026학년도 신입생을 아예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 간 반목이 심해진 원인으로는 켜켜이 쌓인 불신이 꼽힌다. 의정갈등 사태 초기에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상향하고, 의협에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를 명했다. 또 전·현직 집행부를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하고 면허정지 처분을 가했다. 전공의를 대상으론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수련병원들에 전공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지난해 6월17일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서울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집회를 갖고 무기한 휴진을 선언했다. 곽경근 대기자

지난해 6월 들어 정부가 전공의와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사직서수리금지명령 등을 차례로 철회하고 사직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지만, 의료계는 추진하던 대정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의협은 의료계 전면 휴진을 선언하며 서울 여의도에 모여 총궐기대회를 열었고, 서울대병원 등 의대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며 힘을 실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작년 9월30일 전공의를 향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며 의정 갈등 사태 이후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1월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참여한 ‘여·의·정 협의체’가 출범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협의체는 한 달을 못 채우고 빈손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후 마땅한 대화 창구를 찾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비상계엄에 의료개혁 치명상…“합의 이뤘을 때 가능”

지지부진하던 의정 관계는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은 의료계 전체를 들끓게 했다. 155분 만에 해제된 비상계엄으로 10개월을 끌어온 정부의 의료개혁은 치명상을 입었다. 급기야 대한병원협회는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폭력적 행태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참여를 중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2문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비상계엄을 규탄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전문가들은 ‘전공의 처단’ 계엄포고령에서 의료계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짚었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계엄 상황에서 ‘전공의 미복귀 시 처단’이라는 표현을 왜 썼는지 구체적 설명이 없다. 당국의 해명과 사과가 의정 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호진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무리하게 전개한 의대 정원 증원 과정과 전공의를 상대로 한 압박 등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의대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등이 단계적으로 차분히 논의됐다면 의료계와 보건당국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의대 교육 및 전공의 수련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낸 신현영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신 교수는 “개혁의 파트너를 악마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며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기본적 근거 자료를 쌓아 사회적 합의를 이뤘을 때 의료개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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