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 카카오, 개혁이 필요한 시간 [기자수첩] 

‘봉건제’ 카카오, 개혁이 필요한 시간 [기자수첩] 

체스와 장기. 두 게임 모두 승리 조건은 같다. ‘왕’이 잡히면 게임은 끝이 난다. 현실도 비슷하다. 역사 속 무수한 전쟁은 왕의 항복 또는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리더의 부재는 어느 조직에나 혼란을 초래한다. 기업에서도 총수가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우게 될 시 각종 위기론이 터져 나온다. 최고 결정권자가 적절한 투자와 기업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된 카카오도 큰 풍파를 겪고 있다. 그런데 카카오에 대한 우려가 유독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의 구조는 봉건제에요. 군주인 김 의장이 계열사에 자신의 가신들을 내려보낸 구조죠. 막후에서 모든 걸 조정하던 군주가 자리를 비웠으니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죠” 

카카오의 위기 상황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총수가 계열사 CEO을 임명하는 것은 다른 그룹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카카오는 단기간 급속도로 성장했다. 수십년간 업력을 쌓아온 다른 기업과는 다르다. 지난 2009년 매출 300만원에 불과했던 카카오는 지난 2019년 매출 3조원 시대를 열었다. 국내 재계 순위도 쭉쭉 상승해 지난해 15위에 올랐다. 카카오의 계열사 수는 무려 128개다. 삼성(63개)·LG(60개)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측근 인사들을 계열사 대표로 세웠다. 수십년 회사에 몸바친 인물도, 전문 경영인도 아니었다. 카카오가 다른 기업보다 더 봉건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의 권위는 그만큼 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봉건적 구조 아래 잡음도 컸다. 경영 초기부터 김 위원장은 계열사의 자율경영 체제를 강조했다. 각 계열사 CEO에게 전권을 주며 운영을 맡겼다. ‘100인 CEO 성장 프로젝트’ 달성을 목표로 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자율경영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일부 계열사 CEO들은 상장 후 스톡옵션을 대거 행사했다.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용실·보험·완구·골프연습장 사업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에도 부딪혔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업계 독과점 논란도 뼈아팠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와 관련 ‘시세조종’ 의혹도 받게 됐다. 

쏟아지는 경고등에 김 위원장은 쇄신을 약속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카카오 및 계열사의 각종 사법리스크가 불거지자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카카오와 계열사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해관계자와 사회의 기대와 눈높이를 맞춰오지 못했다”며 “회사의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와 카카오 경영쇄신위원회를 통한 단속 시스템을 강화했다. 

그러나 획기적인 쇄신은 없었다. 측근 회전문 인사는 여전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스톡옵션 대량 매도로 논란을 빚었던 정규돈 전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카카오 신임 CTO로 올렸다. 준신위는 정 CTO 선임 관련 카카오에 개선을 권고했으나 정 CTO의 선임이 먼저 강행됐다. 카카오 임원 골프 회원권 논란 등 SNS 폭로전은 ‘내부카르텔’ 의혹에 불만 지폈다. 

김 위원장이 자리를 비운 현재, 카카오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를 주축으로 계열사 대표들이 매주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시기다.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회복 등 카카오 준신위가 카카오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선정한 주요 의제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또한 가신들만이 논의하는 혁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쇄신 과정에서 다양한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체스에서 때로 가장 약한 ‘폰’이 상대방 진영 끝에 가면 강력한 ‘퀸’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0년 출시된 카카오톡은 혁신 그 자체였다. 문자·전화로 소통하던 생활상을 180도 바꿨고,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열었다. 카카오톡을 세상에 내놨던 것처럼 또 다른 개혁으로 카카오는 분명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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