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철강 무관세 물량 배정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우호적 고려를 요청했다. EU가 다음달부터 철강 수입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로 하면서 한국 철강업계뿐 아니라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주력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을 줄이기 위한 대응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11일 이탈리아 로마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대통령이 회담 도중 철강 무관세 쿼터(TRQ) 확보 문제와 관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자 전략적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우호적 고려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EU는 역내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다음달 1일부터 철강 수입 규제를 강화한다.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는 철강 수입 물량을 연간 3500만톤에서 1830만톤으로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기존 25%보다 두 배 높은 5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한국 정부와 철강업계는 무관세 쿼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철강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국내 주력 산업의 기초 소재인 만큼 수출 여건이 악화될 경우 산업 전반으로 부담이 번질 수 있다.
김 실장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 경쟁력은 우리 철강산업이 뒷받침하고 있다”며 “철강산업이 흔들리면 연쇄적 영향을 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EU 통상집행위원 사이에서 쿼터 물량에 대한 집중 협상이 진행됐고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며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타국 대비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번 조치가 철강업계에 그치지 않고 한-EU 산업 협력과 공급망 안정, 투자,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EU FTA를 통해 구축된 호혜적 경제협력 관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걸맞은 결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EU 측은 한국이 공동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인 만큼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도 한국 정부가 EU에 한국 철강업계에 대한 우호적 대우를 요청했고, EU 측이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철강 외에도 반도체와 방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논의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의 제조 역량과 EU의 장비·연구개발 역량을 결합해 공동 연구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방산 분야에서는 EU가 한국을 유럽 방위산업 발전에 필요한 협력 파트너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EU의 산업가속화법과 관련해서도 한국이 FTA 체결국으로서 EU 회원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해서는 검증 기관에 한국 기관을 포함하는 등 국내 산업계의 부담을 줄일 방안을 당부했다. CBAM은 2026년부터 철강, 시멘트 등 6개 품목에 우선 적용되는 제도다.
이번 회담은 글로벌 통상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진행됐다.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일부 국가가 공급망을 무기화하는 등 다자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EU 측은 단일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는 원칙 아래 유사 입장국 간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상이 국내 철강업계의 하반기 수출 부담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한국 철강의 주요 수출 시장 중 하나다. 쿼터 배정 결과에 따라 철강사 수익성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등 후방 산업의 원가 경쟁력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