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장중 8000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7400선까지 밀렸다가 낙폭을 줄이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AI 국민배당’ 발언을 계기로 외국인이 대형 반도체주를 집중 매도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만 6조6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12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29%(179.09포인트) 하락한 7643.15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에 힘입어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8000선을 눈앞에 뒀던 만큼, 이날 조정 폭이 체감상 더 크게 다가왔다는 평가다.
코스피 2%대 상승 후 5%대 급락 ‘롤러코스터 장세’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68% 오른 7953.41로 출발해 장중 7999.67까지 상승하며 8000선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오전 10시께 김 실장의 관련 발언이 알려진 직후 빠르게 하락 전환했고, 이후 낙폭을 키우며 한때 7421.71(-5.12%)까지 급락했다.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4%포인트(p) 넘게 밀리며 패닉 장세를 연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고위 정책 당국자가 인공지능(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국민에게 배당금 형태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들이 해당 발언의 정책적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시장 변동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김용범 실장은 전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과 초과 세수로 이어진다면,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그 과실의 일부는 국민에게 환원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기업 이익에 대한 추가 과세나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며 ‘일단 팔고 보자’는 심리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발언이 ‘횡재세’ 도입 신호로까지 해석되며 투매를 촉발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호민 리 롬바드 오디에 싱가포르 전략가는 “급락 속도를 고려할 때 예상치 못한 김 정책 실장의 ‘국민 AI배당’ 발언이 촉발제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김 실장이 “기업 이익에 대한 새로운 과세가 아니라 AI 호황으로 증가한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는 의미”라고 해명하면서 코스피는 7400선에서 낙폭을 일부 축소했다.
장 마감 이후 청와대는 “김 실장의 국민 배당금 제안은 개인 의견일 뿐 내부 논의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반도체 쏠림 심화+중동 전쟁·美 CPI 경계심 등 맞물린 영향”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변동성 확대를 두고 반도체 쏠림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더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 이날 밤 예정된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둔 경계심 등이 겹치며 차익실현 욕구가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실적·밸류에이션 등 펀더멘털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주가가 단기간 급등한 상황에서 중동 전쟁과 미국 CPI, 외국인 순매도 이슈를 명분 삼아 차익실현 물량이 출회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 시간외 거래에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가 각각 하락하며 글로벌 반도체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면서 “여기에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하는 등 여러 불확실성 요인이 부각되며 반도체 업종 중심으로 낙폭을 확대, 지수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SK하이닉스 3조·삼성전자 2.2조 순매도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6조692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전날 1조원가량 순매도한 것까지 합하면 2거래일 동안 7조9000억원 규모를 순매도한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AI 호황 수혜를 입은 대형 반도체주에 대한 매도세가 거셌다.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3조1168억원, 삼성전자를 2조2083억원 순매도하며 두 종목에서만 코스피 전체 순매도 물량에 맞먹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어 삼성전자우(3711억원), 현대모비스(2390억원), 현대차(2379억원), 삼성중공업(1570억원)을 순매도했다.
기관 역시 유가증권 시장에서 1조4732억원 매도우위를 보이며 지수에 하락 압력을 가했다. 반면 개인은 8조243억원 순매수에 나서며 지수 하락을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았다. 순매수 상위와 규모를 보면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개인이 거의 그대로 받아낸 모양새다. 개인은 SK하이닉스를 3조9708억원, 삼성전자를 2조1911억원 순매수했고, 삼성전자우(3539억원), 현대차(2475억원), 삼성중공업(1919억원) 순으로 매수했다.
외국인 매도 공세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장중 6% 넘게 밀렸다가 낙폭을 줄이며 전일 대비 2.28% 하락한 27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도 장중 4%대 상승과 4%대 하락을 넘나든 끝에 2.39% 내린 183만5000원에 마감했다.
같은 날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32%(28.05포인트) 내린 1179.29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에선 외국인이 5661억원 매수우위를 보인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720억원, 2594억원 순매도했다.
한편 이날 급락과 관련해 야권은 공세에 나섰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코스피는 8000 돌파 기대감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가던 상황에서 김 실장이 느닷없이 국민배당금 구상을 꺼내든 후 폭락했다”며 “대통령은 자본시장 불안을 초래한 김 실장의 발언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김 실장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