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예고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지도부가 파업 직전 해외 휴양지로 휴가를 떠난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 조합원들에게는 파업 참여를 독려하면서 정작 핵심 지도부가 자리를 뜬 것이다.
이들은 사내 게시판 여론 형성을 위해 댓글 작성을 조직적으로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노조가 ‘공정’과 ‘합리’를 쟁의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워 온 만큼, 이번 논란은 노조의 도덕성과 책임성을 둘러싼 문제로 번지는 모습이다.
29일 노동계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소속 지부 가운데 5월 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지부와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부의 지부장들이 최근 해외 휴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승호 삼성전자지부장과 박재성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부장이 비슷한 시기 동남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오는 5월1일부터, 삼성전자 노조는 5월21일부터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일부 직원이 선제적으로 파업에 들어간 상황에서 쟁의 책임자인 지부장이 자리를 비운 것을 두고 노조 내부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날부터 자재 소분 부문 노조 조합원 60여명은 부분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박 지부장은 파업 돌입 전날까지 휴가 일정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었다는 입장이지만, 노사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지도부가 협상 국면에서 자리를 비운 것은 책임 있는 태도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조가 그동안 “회사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해 온 상황에서 정작 대화 국면의 핵심 당사자인 지부장이 부재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지도부의 행보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다들 힘들게 고민하고 결정한 시기에 여행은 좀 아니다”, “한 번쯤은 일정을 조정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취지의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한 직원은 “협상을 하려면 결국 지부장의 결정이 필요할 텐데, 꼭 여행 일정과 파업 일정이 겹쳐야 했느냐”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회사와 협력업체, 생산 차질 등에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피해 규모가 6400억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가 대화에 불성실하다”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회사는 파업 전에 노사 간 대화를 하자는 고용노동부 중부청 제안에 응하려고 했으나, 위원장이 부재한 상황이라 유감”이라며 “위원장 복귀 이후 대화 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달아라”…여론 조작·파업 불참자 압박 논란
노조를 둘러싼 논란은 지도부 휴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에게 특정 사내 게시물에 노조 측 입장에 유리한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출된 노조 단체대화방에는 “조직국의 명령이다”, “댓글을 달아라” 등 강압적인 표현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노조가 사내 여론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이나 비조합원들을 향한 압박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대화방에선 파업 불참자 등을 향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파업 후에 두고 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활동은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다. 다만 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사내 여론을 조직적으로 유도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노조가 강조해 온 ‘공정한 소통’이라는 명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업계는 이번 논란이 삼성그룹 초기업노조가 내세워 온 ‘새로운 노동운동’의 정체성과도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초기업노조는 그동안 기존 강성 노조와 차별화된 합리적 교섭, 투명한 소통, 조합원 중심의 의사결정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파업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지도부가 휴가를 떠났다는 논란과 댓글 동원 의혹, 파업 불참자 압박 논란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노조 내부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쟁의가 오히려 일부 지도부의 책임 회피와 내부 강압 논란으로 흐를 경우 노조의 협상력과 명분 모두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특정 사업장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해 온 새로운 노동운동의 신뢰와도 연결될 수 있다”며 “노조가 스스로 내세운 가치에 걸맞은 책임성과 투명성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