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4)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7)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7)

마네의 마지막 역작 <폴리 베르제르 바> (하)

승인 2026-06-29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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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 바, 1882, 캔버스에 유채, 130 x 96cm, 코톨드 갤러리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 바, 1882, 캔버스에 유채, 130 x 96cm, 코톨드 갤러리

티에리 드 뒤브(Thierry de Duve)의 해석은 마네의 그림을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해준다. 그는 <폴리 베르제르 바>가 단일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을 이어 붙인 것’이라 말했다.

즉, 화가가 자리를 옮겼거나, 혹은 거울이 움직였다는 가정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 속 거울 반사의 ‘어긋남’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 그림은 두 개의 시간과 두 개의 시점을 압축한 무대가 된다.
 
화가가 고심한 흔적이 X선 투시도에 나타난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바>가 얼마나 수수께끼의 그림인지 반어적으로 증명해 준다. 코톨드 인스티튜드 갤러리의 X선 투시도는 쉬종의 뒷모습이 세 번 수정된 것을 보여준다. 지팡이를 든 신사는 앙리 뒤프레라는 군인이다.
화가가 고심한 흔적이 X선 투시도에 나타난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바>가 얼마나 수수께끼의 그림인지 반어적으로 증명해 준다. 코톨드 인스티튜드 갤러리의 X선 투시도는 쉬종의 뒷모습이 세 번 수정된 것을 보여준다. 지팡이를 든 신사는 앙리 뒤프레라는 군인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림 속 여인과 거울 속 남자는 같은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파편이 한 화면에 겹쳐진 것일 수도 있다.

관객은 그 틈새를 읽어내며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하나의 현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화 <동감>의 유지태와 김하늘
영화 <동감>의 유지태와 김하늘
 
영화 <동감>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남녀가 무전기를 통해 연결되며 특별한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로, 시간과 운명을 초월한 사랑과 선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2000)과 리메이크(2022) 모두 ‘세대를 잇는 교감’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네는 실제 바에서 본 풍경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았다. 당시 회고록에 몸이 아파 카페로 갈 수 없는 마네는 바텐더를 고용해 대리석 카운터와 커다란 거울을 설치하고, 술병과 과일그릇을 가져다 놓은 뒤 연극 무대처럼 연출했다. 웨이트리스는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모자를 쓴 남자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마치 한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든 거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라쇼몽>(195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라쇼몽>(195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라쇼몽>(1950)은 숲 속에서 벌어진 살인과 강간을 목격한 여러 인물이 각자의 관점에서 전혀 다른 진술을 하는 구조로,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옛날 그림들은 관객이 ‘정해진 자리’에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원근법이나 소실점이 정확히 계산되어 있어서, 그 자리에 서면 화가가 본 것과 똑같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감상할 때 ‘대각선 거리만큼 떨어져 봐야 한다’고 정해준 것처럼 말이다. 이는 우리에게 권장 TV 시청 거리로 남아 있다.

그런데 마네는 이런 규칙을 깨버렸다. 그는 거울을 활용해 관객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림 속 풍경이나 인물이 꼭 한 자리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각자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즉, 마네는 그림을 ‘고정된 관람석’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관객은 더 이상 화가가 지정한 자리에 묶이지 않고, 3D 화면처럼 그림 앞에서 자기만의 시선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마네는 그림을 하나의 ‘가상현실’로 만든 셈이다. 관객은 그 무대를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각자 다른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참여하고 탐험하는 경험이 되는 셈이다. 마네는 동시대인들에게 이해 받지 못했지만, 100년 뒤의 후손들은 이해해 주리라 믿고 후손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근법으로 정형화된 딱딱한 공간에서 벗어나, 마네의 방식은 훨씬 더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감각을 준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시작점이 마네이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가 바로 마네인 것이다.

마네는 그림을 그릴 때 단순히 ‘사실처럼 보이게’만 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는 캔버스 자체가 하나의 물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빛을 화면 앞쪽으로 쏟아내듯 사용하고, 수평선과 수직선을 그림 속에 넣어 캔버스의 평면을 강조했다. 깊이를 없애 버리니 관객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림 앞에 ‘딱’ 멈춰 서게 된다. 마네는 그렇게 관객의 자리를 흔들어 놓았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던 개그콘서트처럼 마네는 ‘그림은 그림일 뿐’, ‘그림은 색깔 놀이’라며 현대미술을 연 것이다. 캔버스는 현실을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말년의 대표작인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보면, 앞에 서 있는 여종업원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뒤에 있는 거울을 보면, 같은 여자가 다른 위치에서 또 비쳐 있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걸 보여주는 거다.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쉽게 합성할 수 있지만, 마네는 이미 150년 전에 이런 ‘복수 시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마네는 비재현적 회화를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그의 그림은 이미 현대미술의 씨앗을 담고 있었다. 푸코가 “마네가 그림을 오브제로 만든 화가”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후 추상화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마네를 떠올리며 “아, 이미 그가 길을 열어놨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MC 에셔(Escher, 1898~1972), 상대성, 1953, 석판화, 27.7x29.2cm
MC 에셔(Escher, 1898~1972), 상대성, 1953, 석판화, 27.7x29.2cm
 
에셔는 네덜란드 판화가로 서로 다른 세 방향의 중력이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는 기하학적 역설을 표현한 상대성(Relativity)이다.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셉션>과 같은 현대 미디어뿐만 아니라 로테르담에 위치한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의 수장고의 설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의 수장고.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의 수장고.

설계를 논의하던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가 이케아의 스텐레스스틸 볼을 보고 영감을 얻은 수장고인 아츠 데포는 건물 외벽에 로테르담의 풍경이 반사되는 멋진 파사드를 보여준다. 내부는 에셔의 판화에서 3차원의 미로처럼 투명한 엘리베이터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듯하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의 환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예술과 건축이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로테르담에 위치한 초현실주의에 특화된 보이만스 판 뵈닝겐 수장고 아츠데포
로테르담에 위치한 초현실주의에 특화된 보이만스 판 뵈닝겐 수장고 아츠데포
 
즉, 마네의 그림은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과 공간 감각을 뒤흔드는 실험장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VR이나 3D 그래픽으로 경험하는 시점의 다양성을, 그는 이미 붓과 캔버스로 보여주었던 거다.

“마네의 그림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최초의 실험장이었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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