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니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백발의 여성이 춤을 춘다. 제주 바람에 손에 든 흰 천이 나부끼고 버석한 머리칼이 흩날린다. 필시 사연이 있는 표정이다. 영화 ‘내 이름은’ 오프닝 신이다. 제목만 보고 예매한 것이 아니라면 이 여성이 왜 그런 얼굴로 왜 그런 춤을 추고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정순(염혜란) 영옥(신우빈) 모자의 1998년을 그린 이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가 제주 4.3 사건이기 때문이다.
서사 구조는 단순하고 쉽다. 잃어버린 9살 이전 기억을 되찾으려 하는 정순, 전학생 경태(박지빈)의 직간접적 폭력에 순응하다 끝내 맞서는 영옥. 두 인물의 이야기는 각각 전개되는 듯하지만 결국 4.3 사건으로 맞물린다. 특히 1949년 4.3사건 당시 미군정과 서울에서 온 경태는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보이는 지점이다. 영화적 재미 측면에서만 본다면 아쉬울 수 있지만 역사적 아픔을 알리고 이를 잊지 말자고 당부하기 위함이라면 최적의 방식이겠다.
염혜란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일품이다. 아들과 함께하는 일상부터 제주 곳곳을 더듬으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까지, 염혜란은 정순 그 자체로 존재한다. 정순이 제주에서 나고 자란 억척스러운 엄마라는 점에서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를 떠올리기 쉽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다. 염혜란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특유의 표현으로 그렇게 관객을 설득하고야 만다.
무엇보다 정순은 4.3 사건이 우리 민족에 남긴 상흔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힘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오가는 정순을 쫓게 만드는 흡인력에서 나오는데, 염혜란은 이 중차대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한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처럼 딱 떨어지는 이야기에서 그의 살아 숨 쉬는 감정 연기는 시대적 아픔을 훑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영화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의 백미는 이야기의 문을 열고 닫는 정순의 독무,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텀블벅 펀딩 참여자들이다. 모두 지금 이 작품을 있게 한 이름들이다. 15일 개봉, 상영시간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