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운전을 왜 그렇게 해?” [운전할 결심]

“아가씨, 운전을 왜 그렇게 해?” [운전할 결심]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운전을 못하면 혼자서 자유롭게 살 수 없을것 같아요”

운전 경력 12년의 송슬기(32·직장인)씨는 운전 능력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언제든 남의 도움 없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마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나와도 걱정이 없다. 특히 송씨는 “지방에 살수록 대중교통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으면 자유롭게 다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운전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은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중년 여성을 폄훼하는 ‘김여사’부터 여성의 독립성을 꺾는 ‘오빠차’까지 여성 운전자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할 결심을 한 여성들의 도로 위 성차별 극복기를 들어봤다. 운전 경력 최소 2년, 최대 12년인 30대 여성 5명과 여성 이동권 독립 프로젝트 ‘언니차’를 운영 중인 이연지 대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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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건강, 문화생활 모두 ‘운전 능력’이 관건

여성 운전자들은 운전할 결심 덕분에 더 나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모(34·직장인)씨는 운전면허 취득과 차량 구매를 ‘인생에서 가장 잘한 소비’로 꼽았다. 이씨는 오래전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2년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기동력만큼 강력한 자립 수단이 없다고 생각해요. 운전을 할 줄 알면 무거운 장비가 필요한 취미활동이나 운동도 거리낌 없이 도전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스노클링을 하러 금요일 밤마다 차에 장비를 싣고 바다에 갈 수 있게 됐어요. 운전이 직장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대중교통편 유무에 구애받지 않고, 제 진로와 경력 신장에 더 적합한 직장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운전대를 잡자 성격도 바뀌었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해졌다. 또 다른 여성 운전자 이모(35·직장인)씨는 운전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운전 경력은 5년이다.

“차가 없을 때는 교외의 카페나 맛집을 가고 싶으면 차가 있는 친구나 남자친구부터 찾았어요. 그때는 차 있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딱히 불편하지 않았어요. 직접 운전을 시작하니까 과거의 내가 남에게 굉장히 의존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운전을 하면서 의사결정에 제약이 사라지니까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이 생겼어요. 주변에 아직도 ‘차 있는 남자 만나지 뭐 하러 운전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편견이 여성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제약한다고 생각해요.”

‘여자 차’ 같으면 위협 운전… “경차 타고 성질 버려”

여성 운전자들은 잘못하지 않아도 도로에서 욕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상대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여성 비하적 욕설을 외치거나, 위협 운전을 하며 따라오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강모(30·직장인)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대 운전자에게 화풀이를 당한 경험이 많다. 강씨의 운전 경력은 2년이다.

“내 잘못도 아닌데, 여자 운전자라고 만만하게 보고 화를 내는 상대 운전자가 많아요. 본인이 의도한 대로 도로 상황이 풀리지 않으니까, 지나가면서 괜히 승용차 창문을 열고 저를 향해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르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가 나요. 제가 우락부락한 마동석 배우 같은 외모를 가졌으면 분명 얌전하고 조용하게 지나갔을 거예요.”

이른바 ‘여자 차’ 같은 차량을 운전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차체를 인형과 스티커로 꾸몄거나, 특이한 색상이라면 화풀이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차량의 규모도 관건이다. 경차를 모는 여성 운전자는 도로에서 시비가 붙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이모(35·직장인)씨는 경차를 몰면서 성미가 거칠어졌다. 이 씨의 운전 경력은 10년이다.

“경차는 여성이면서 초보인 운전자가 몬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저는 운전을 시작한 초반에는 경차에 알록달록 예쁘장한 초보운전 스티커까지 붙이고 다녔어요. 그때 저는 도로 위의 ‘끼어들기 맛집’이었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거칠게 운전하고, 마찰이 있을 때 사납게 대응하게 됐어요. 경차 몰면서 성격을 다 버린 것 같아요. 지금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몰고 있는데, 이전보다 시비를 거는 운전자가 줄었어요.”

언니차가 진행한 여성 운전자 교육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운전자들이 자동차의 기본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언니차는 지금까지 1000여명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40회 이상 교육을 진행했다. 여성이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이동권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 교육 목표다. 이연지 언니차 프로젝트 대표

상대 과실 100이지만… “아가씨 운전 똑바로 해”

사고가 나는 순간, 여성 운전자들은 모두 순진한 아가씨로 간주된다. 사고를 낸 상대 운전자는 십중팔구 험악한 표정과 “아가씨 운전을 왜 그렇게 해”라는 대사로 기선제압을 시도한다. 여성 운전자는 당연히 도로교통과 사고처리 절차를 잘 알지 못할 거라 넘겨짚는 것이다. 이씨(35세·직장인·운전 경력 10년)는 황당한 순간을 자주 겪었다.

“상대방이 후진을 하다가 가만히 있던 제 차를 일방적으로 들이받았어요. 40대 중반의 남성 운전자였는데, 차에서 내리더니 제게 ‘이 사고는 쌍방의 과실이 있으니 각자 처리하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젊은 여성 운전자라서 얕보고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처음엔 보험 처리하고 좋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대인 접수까지 했어요. 물론 그 사고는 상대방 과실 비율 100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송씨(32·직장인·운전 경력 12년)도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교차로에서 초록 불을 보고 출발했는데, 2차선에 있던 택시가 1차선으로 갑자기 끼어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뒤차가 급브레이크를 못보고 제 차를 받았죠. 상대 운전자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이었어요. 저한테 오더니 ‘아가씨 내려봐라,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쩌냐, 운전 똑바로 해라’라며 한참 소리를 질렀어요. 위협을 느낀 저는 차에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경찰이 오자 상대 운전자는 ‘아가씨, 인생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라며 욕설을 멈췄어요. 사고 과실 비율은 제가 0, 상대가 100으로 판정 났습니다.”

아는 것이 힘 “무시하는 사람들을 무시합시다”

위협 운전을 당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잘못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연지 언니차 프로젝트 대표는 여성 운전자들에게 배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무시에 무시로 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운전자에게는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사고 현장을 촬영하고, 상대 차량의 번호판, 상대 운전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반드시 기록해야 합니다. 사고 당사자로서 발언권을 충분히 행사하세요. 놀라거나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해야 할 말을 합시다. 경찰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른 차량을 위험하게 추격하거나, 운전자를 위협하며 차량 밖으로 끌어내려는 행위는 모두 현행범으로 검거될 수 있습니다.”

배짱을 기르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 대표는 사고처리 매뉴얼을 철저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로 위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 운전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운전을 무서워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사고처리 매뉴얼을 잘 알고 있다면, 문제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힘이 생길 것입니다. 블랙박스 점검도 잊지 말아야 해요. 점검일 기준 하루 전후 영상이 제대로 녹화됐는지 확인하세요. 상대 운전자가 무례한 태도를 보일 때 어떤 말로 받아칠지 미리 생각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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