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전도가 만들어지기 전 전자들이 ‘숨은 질서’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KAIST가 최초로 규명했다.
KAIST 물리학과 김용관·한명준·이성빈 교수 연구팀이 차세대 양자물질인 카고메 금속(CsV₃Sb₅)에서 초전도가 나타나기 전 전자들이 먼저 고리전류 질서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이론으로 증명했다.
전기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는 전력 손실이 거의 없어 양자컴퓨터, 자기부상열차, 핵융합, 차세대 전력망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전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초전도 상태에 도달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전자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다가 곧바로 초전도 상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숨은 질서’를 만든 뒤 여러 단계를 거쳐 초전도에 이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를 통해 전자들이 ‘고리전류 질서→전하밀도파→초전도’ 순서로 변한다는 과정을 확인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초전도 발생 원리 논쟁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다.
연구에 사용한 카고메 금속은 일본 전통 바구니 문양처럼 삼각형이 반복되는 원자 구조를 가진 물질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자들이 서로 강하게 영향을 주고받아 일반 금속에서는 보기 어려운 초전도와 전하밀도파, 위상학적 전자상태 같은 다양한 양자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CsV₃Sb₅는 초전도와 전하밀도파가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카고메 금속으로 초전도 연구의 핵심 물질이다.
그동안 학계는 이 물질에서 나타나는 시간반전대칭성 깨짐이 전하밀도파가 생긴 뒤 나타나는 현상인지, 아니면 그보다 먼저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전자 질서인지 논쟁이 이어졌다.
시간반전대칭성이 깨졌다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같은 물리 현상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자들이 특정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원편광-각분해광전자분광(CD-ARPES) 기법을 활용했다.
왼쪽으로 회전하는 원편광과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원편광을 시료에 번갈아 쏜 뒤 밖으로 방출되는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정밀하게 분석, 두 빛에 대한 전자의 반응 차이를 비교하면 물질 내부에 숨어 있는 전자의 방향성과 대칭성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험 장치에서 생길 수 있는 원편광 이색성 신호를 제거하고 물질 자체에서 발생한 신호만 분리해 분석했다.
특히 전자상태 변화가 가장 민감하게 나타나는 반 호브 특이점 영역을 집중적으로 측정했다.
분석 결과 전하밀도파가 형성되는 약 94K(영하 179℃)보다 훨씬 높은 140~145K(영하 133℃)에서 이미 전자들이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전자들이 초전도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작은 고리 모양의 집단 운동인 고리전류 질서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리전류 질서는 전자가 실제 원을 그리며 돌지 않고 원자 사이를 이동하는 양자역학적 과정에서 특정 방향성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장거리 자기질서가 없어도 시간반전대칭성이 깨질 수 있어 오래전부터 고온 초전도체의 숨은 질서를 설명하는 후보로 제시됐지만 실험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온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며 전자상태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먼저 고리전류 질서가 나타났고 이어 전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는 전하밀도파가 형성됐으며, 마지막으로 초전도 상태에 도달했다.
연구팀은 제1원리 계산과 타이트바인딩 모델을 활용한 이론 계산도 수행했다.
계산 결과는 실험에서 측정한 원편광 이색성 신호의 부호와 에너지 변화를 정확하게 재현했다.
이를 통해 관측한 신호가 실험 오차가 아닌 실제 고리전류 질서에서 비롯됐음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초전도 전자쌍이 이미 시간반전대칭성이 깨지고 전하밀도파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기존 초전도 이론을 보완하고 고온 초전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강상관 양자물질의 숨은 전자 질서를 이해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차세대 초전도체와 양자컴퓨터, 초저전력 전자소자, 미래 전력망 개발에도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초전도가 나타나기 전 전자들이 어떤 순서로 움직이며 숨은 질서를 만드는지 처음으로 보여준 연구"라며 ”새로운 초전도 물질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실험 결과가 이론에서 예측한 전자들의 움직임과 정확히 일치했다"며 ”실험과 이론을 함께 검증해 숨은 전자 질서의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리전류 질서와 전하밀도파가 서로 얽혀 복합적인 양자상태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새로운 초전도 상태를 설계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차재훈·이형근 박사, 심상준 석사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고, 연구결과는 지난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게재됐다.
(논문명: Evidence of time-reversal symmetry breaking above the charge density wave order in a kagome metal)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