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새재 휘어진 고갯길을 따라 주흘산의 서늘한 바람이 내려올 때면,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시대를 견뎌낸 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소설가인 나에게 문경은 단순한 지자체나 지도 위에 표시된 행정구역이 아니다. 사람 향기 나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의 숨은 이야기들을 원고지 위에 살려내온 나에게 문경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터’이자 인간에 대한 깊은 경외를 가르쳐준 유독 특별하고 애틋한 고장이다.
돌아보면 그 시작은 채널A다큐 행복할지도라는 ‘문경’편 방송의 인연이었다. 카메라 렌즈와 마이크를 통해 마주했던 문경의 첫인상은 투박하지만 깊은 흙냄새를 품고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신현국 시장님은 관찰자가 아니라 늘 시민의 삶 깊숙한 곳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경청자’였다. 그 인연의 끈이 이어져 문경시청 접견실에서 홍보대사 임명장을 가슴에 안던날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환하게 웃으며 내밀던 시장님의 손은 단단했고, 홍보대사로서 문경의 가치를 전국에 널리 알려달라던 당부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감과 고향 문경을 향한 절절한 진심이 행간마다 배어 있었다. “작가는 글 뒤에 진심을 숨기고, 행정가는 시민의 한숨속에 진심을 심는다”던 나의 오랜 믿음을 눈빛으로 증명해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 진심이 가장 뜨겁게 맞닿았던 날은 나의 창작집 소설 대표작 <묵호댁>을 연극 무대로 올리던 날이었다. 자식을 향한 지극한 모성과 공동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던 묵직한 울림의 서사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문경시 문화회관의 불빛 아래 첫 무대를 올렸을 때, 신현국 시장님은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며 작가의 손을 잡아주셨다. 문화와 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을 알고, 그것을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어 했던 시장님의 혜안 덕분에 소설 <묵호댁>은 문경시민들의 눈물과 감동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 자신의 문장이 살아 숨 쉬는 무대로 구현되는 것만큼 가슴 벅찬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신현국 시장님은 나에게 단순한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예술의 숨결을 알아봐 주시고 나의 문장에 큰 힘을 실어주신 따뜻한 어른이셨다.
우리는 참 많은 길을 함께 걸었다. 문경의 찬란한 사계를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던 날들, 하늘은 야속하게도 맑은 날 대신 진눈깨비와 거센 빗줄기를 뿌려대곤 했다. 우산 하나를 함께 받쳐 들고 비가 쏟아지는 문경새재의 성벽을 걸을 때,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빗물 속에서도 신현국 시장님의 시선은 언제나 문경의 산천을 향해 있었다. 봄날 감홍사과 과수원에 피어나던 하얀 사과꽃의 향기, 여름날 용문면의 푸른 녹음, 가을날 붉게 물들어가던 오미자의 빛깔, 그리고 겨울날 하얗게 눈 덮인 주흘산의 설경에 이르기까지. 눈비를 함께 맞으며 우산 속에서 시장님이 들려주시던 문경의 이야기는 행정 언어가 아닌 한편의 서정시였다. 척박한 계절 속에서도 묵묵히 내일의 결실을 준비하는 문경의 강인한 온기는, 그날 함께 썼던 우산의 좁은 틈새를 통해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문경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도 찬란했던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바로 대한민국 광부 역사 100주년이다. 어두컴컴한 막장 속에서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의 산업화를 위해 탄가루를 마시며 청춘을 바쳤던 문경 광부들의 삶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거대한 역사다. 신현국 시장님은 이 역사적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가슴에 새기고 계셨다. 시장님은 나에게 ”작가님, 올해 광부 100주년을 맞아 문경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광부들의 진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 주십시오“ 라며 묵직한 화두를 던지셨고, 작가가 온전히 집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신뢰와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그 큰 뜻과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문경 광부들의 애환과 불꽃 같은 삶을 다룬 소설 <복수초> 가 탄생할 수 있었다. 차가운 눈 속에서 기어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복수초처럼, 어둠 속에서 희망을 캐 올리던 문경 광부들의 이야기는 이제 지면을 넘어 거대한 날개를 달고 대한민국 전역에 방영될 예정이다. 광부 100주년을 기리는 이 거대한 문화적 서사는 오직 문경을 사랑하고, 문경의 숨은 영웅들을 기억 하고자 했던 신현국 시장님의 크나큰 뜻과 안목이 없었다면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의 매 장면마다 흐르게 될 문경의 역사위에, 그리고 그 역사를 부활시킨 시장님의 이름위에 홍보대사이자 작가로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이제 신현국 시장님은 12년이라는 치열했던 질주의 시간을 뒤로하고 명예롭게 무대 아래로 내려오셨다. KTX문경역 개통과 역세권 개발,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처럼 시장님이 남긴 굵직한 행정의 궤적들은 문경의 도심 곳곳에 훈장처럼 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신현국은 화려한 성과 뒤에서 홀로 고뇌하던 밤의 가쁜 숨소리, 눈비 속에서 시민들의 팍팍한 삶을 염려하며 우산을 쥐었던 그 단단한 손의 온기다.
의자는 비워지지만 신현국 문경시장님이 이 땅에 심어놓은 뜨거운 사랑의 문장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시장직에서는 물러나시지만 “이곳에 머물며 문경의 도약을 항상 응원하겠다”던 약속처럼, 이제는 인간 신현국으로서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문경의 아름다운 사계를 온전히 누리시길 소망한다. 시장님, 함께 문경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외칠 수 있었던 시간은 작가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날이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장님이 계셨기에 문경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작가 프로필] 소설가·방송인 전정희
◇문학 활동 : 2016년 <묵호댁>으로 데뷔후, 토속적이고 감성적인 서사로 문단의 주목을 받음. 2024년 제3회 문학세계 작가상 소설부문 ‘대상’ 수상. 창작집대표작 <묵호댁> 연극화 및 문경시 상연을 주도하였으며, 대한민국 광부100주년 기념 소설 <복수초>를 집필하여 올해 드라마 제작 및 방영을 앞두고 있음.
◇방송 활동 : KBS·MBN·채널A 등 주요 방송사에서 MC 및 교양·다큐·기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며 대중과 소통.
◇대외 활동 : 문경시·동해시·인천시·강화군·영덕군·화천군 홍보대사 및 대외협력관으로 위촉되어 지역의 숨은 가치를 알리는 스토리텔링 작가로 활동중.
전인수 기자 penjer@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