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8일 (5)
“주사침·수액세트 구하기 어려워”…의료제품 수급 불안에 팔 걷은 의료계

“주사침·수액세트 구하기 어려워”…의료제품 수급 불안에 팔 걷은 의료계

불필요한 소모품 사용 줄이고 의료기관별 재고 상시 점검
기본 의료소모품 부족…재고 부족에 주문 취소도
정부, 유통질서 교란 행위 ‘엄중 조치’ 경고

승인 2026-04-14 11:28:49
한 시민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중동 지역 군사 충돌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의료계가 의료소모품과 의약품 수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일선 개원가에선 주사기, 주사침, 수액세트 등 기초 의료소모품 부족 사례가 확인되면서 위기 대응 체계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신장학회는 최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과 물류 차질로 의료물자 수급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투석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자원 절약 캠페인’을 시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주요 해상 물류 경로 불안정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이로 인해 의료용 필수 자재의 수급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혈액투석에 필수적인 필터와 라인, 소독제 등 주요 소모품의 원료인 나프타 공급 차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선제 대응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투석 치료는 중단될 경우 환자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학회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함께 참여하는 실천 중심 캠페인을 통해 자원 절약과 안정적 진료 유지에 나서기로 했다.

학회는 의료진에게 투석 준비와 처치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모품 사용을 줄이고, 의료기관별 재고를 상시 점검해 특정 품목이 과도하게 소모되지 않도록 권고했다. 또 특정 약제나 재료 수급이 불안정할 경우 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라 안전성이 검증된 대체 치료 전략을 적극 검토하도록 했다.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치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처방받은 약제를 정해진 용법에 맞춰 정확히 복용해 불필요한 중복 처방과 약제 낭비를 막고, 예약된 투석 및 진료 시간을 준수해 의료 자원이 필요한 환자에게 적절히 배분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학회는 정부와 협력해 의료소모품 수급 위기 발생 시 신속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상황 악화 시에도 투석 환자가 치료 공백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재난 대응 지침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기 신장학회 재난대응이사는 “투석은 단 하루도 중단될 수 없는 필수의료이며,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이 치료 유지의 핵심”이라며 “이번 캠페인은 재난 수준의 위기 속에서도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과 환자, 정부가 합심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투석 치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도 수급 불안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성남시의사회는 최근 관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약품 및 의료제품 수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부 의료기관에서 의료소모품과 의약품 수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난 13일 전했다. 이번 조사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요청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부족 품목은 고가 의약품보다는 주사기와 주사침, 수액세트, 수액라인 등 기본적인 의료소모품에 집중됐다. 특히 주사기는 40곳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부족을 호소했고, 주사침과 수액세트·수액라인도 각각 약 7곳 내외에서 부족 사례가 확인됐다. 멸균 증류수, 약포지, 약병, 장갑 등 조제·진료 관련 소모품에서도 일부 부족 사례가 있었고 알보칠, 인데놀, 디펩티벤, 생리식염수 등 일부 의약품 수급 차질도 개별적으로 보고됐다.

수급 차질 양상도 심상치 않다. 다수 의료기관이 ‘품절’, ‘재고 없음’, ‘주문 불가’ 상태를 호소했다. 일부는 주문 이후에도 재고 부족으로 취소된다고 응답했다. 현재 보유 중인 재고가 1주일 안에 소진될 수준이라는 답변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태 성남시의사회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중동 정세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일부 의료물품 수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관내 의료기관에서 기본적인 의료소모품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중동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의료물품 수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며 “회원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료물품 수급 상시 신고 체계를 운영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급 차질 사례를 수시로 파악하고, 필요 시 관계기관과 협조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등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유경(오른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8일 수액세트 제조업체를 방문해 생산 및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의료계 안팎에선 이번 사안을 단순한 일시적 품절 문제가 아니라, 필수 의료체계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투석처럼 치료 중단이 곧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는 물론, 개원가의 일상 진료를 떠받치는 주사기·수액세트 같은 기초소모품까지 공급 차질 조짐이 나타나면서 의료자원 관리와 공급망 점검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특정 품목 하나의 부족이 아니라, 작은 공급 차질이 연쇄적으로 진료 공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학회, 지역 의료계가 함께 재고 관리와 대체 전략, 현장 모니터링을 촘촘하게 운영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주사기 및 주사침 매점매석행위 금지 고시’를 발령, 주사기와 주사침 매점매석을 금지하고 긴급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번 고시에 따라 제조업자와 판매업자는 주사기와 주사침을 일정 기준 이상 보유하거나 판매를 기피하고, 특정 거래처에 과다 판매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기존 사업자는 전년도 월평균 판매량의 150%를 초과해 5일 이상 보관하거나 110%를 넘는 판매도 제한된다. 신규 사업자도 일정 기간 내 판매·반환하지 않을 경우 제재 대상이 된다. 고시는 오는 6월30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유통질서 교란 행위에 엄중 조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SNS를 통해 “원료(나프타) 우선 배정으로 2월 대비 3·4월 주사기 생산량은 변동이 없으나, 일부 온라인 판매처에선 품절이 나타나는 등 생산물량이 현장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제품의 유통질서 교란행위에 대해 범정부 차원에서 엄중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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