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로버트 홀 여사가 4명의 시각장애 여학생을 정진소학교에 입학시키며 이 땅에 통합교육의 씨앗을 뿌린 지 어느덧 12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한국 특수교육의 시작 자체가 곧 시각장애 통합교육이었던 셈이다. 이토록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졌기에 시각장애 분야는 마땅히 가장 선진적인 통합 시스템을 갖추었으리라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그 오랜 세월이 무색할 만큼,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각장애 통합교육은 현장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 채 가장 정체된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
필자는 평생을 시각장애 교육 현장에 몸담아온 교육자로서, ‘통합’이라는 이상적인 가치 아래 실체적 지원이 결여된 시스템을 본의 아니게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성찰해 본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시스템 대전환을 위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 가지 본질적인 화두를 꺼내어보고자 한다.
첫째, ‘슈퍼맨 특수교사’라는 막연한 기대에 숨겨진 전문성의 한계다. 현행 특수교사 양성 체계는 모든 장애 영역을 아우르는 보편적 역량을 강조한다.
그러나 4년의 대학 과정 중 시각장애 전공과목은 고작 3학점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체 120학점 중 고작 2.5%의 학습만으로 현장에 배치된 교사에게 점자 지도, 보행 훈련, 보조공학기기 활용이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다.
준비되지 않은 교사와 방치된 학생이 마주한 교실은 교육의 현장이 아닌, 서로에게 고립된 섬이 되고 만다.
둘째, 지원 시스템의 양적 성장에 가려진 질적 공백이다. 전국 198개 특수교육지원센터라는 거대한 조직망이 구축되었음에도 시각장애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확대 핵심 교육과정(ECC)’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센터에 배치된 교사들 역시 대학 시절 시각장애 관련 교육과정 이수 부족으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다 보니, 학생이 시험 문제 점역이나 보행 및 시기능 훈련 등을 요청해도 이를 현장에서 즉각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역사회 내 외부 기관에 의뢰하려 해도 서울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이를 감당할 전문 인력조차 구하기 힘든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전문 시스템의 부재는 결국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맹학교로 되돌아오는 ‘역통합’ 현상을 낳는다. 실제로 서울맹학교 시각장애 지원센터의 데이터에 의하면, 일반 학교에 통합되었다 전문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다시 맹학교로 전입하거나 센터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학생 수가 해마다 수십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 시각장애 통합교육의 실패를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다.
셋째, 맹학교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육 전달 모형이라는 고루한 인식의 벽이다. 우리가 획일적인 통합의 형식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선진국들은 이미 맹학교를 ‘전문성 거점(Resource Center)’으로 재정의했다.
일본은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전국의 모든 맹학교가 지역사회 시각장애 통합학급 학생을 지원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의 텍사스 맹학교(TSBVI)는 우리나라의 7배가 넘는 광활한 지역에 있는 유일한 시각장애 특수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관내 11,000여 명에 달하는 통합교육 학생들의 ECC 교육을 너끈히 담당하고 있다.
특히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숙박형 집중 캠프(outreach program) 등을 통해 시각장애 학생의 통합교육 안착에 핵심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제 우리도 인정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체계 내에서 맹학교만큼 시각장애 교육의 전문 인프라와 노하우를 항시 갖춘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시각장애 학생의 점자 교과서 적기 보급 문제로 제기된 헌법소원 사태는 그간 우리 사회가 가장 수월한 영역으로 여겨온 시각장애 통합교육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외되고 방치됐는지를 반증하는 서글픈 사례다.
학습의 가장 기본인 교과서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통합’을 말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개정하여 전국 맹학교가 광역화된 지역 내 일반 학교 시각장애 학생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
일본과 미국의 사례처럼 맹학교가 보유한 대체 불가능한 전문 자원을 지역사회로 과감히 개방하고 확장할 때 비로소 실체 있는 통합교육이 가능해진다.
통합교육은 단순히 장애 학생을 비장애 학생 옆에 앉혀두는 물리적 배치가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읽고 당당히 세상으로 걸어 나갈 실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126년 전 홀 여사의 결단으로 뿌려진 통합교육의 씨앗이 맹학교라는 전문적 토양 위에서 진정한 결실을 보기를 기대한다. 맹학교가 통합교육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 바로 설 때, 우리 아이들은 비로소 ‘섬’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확대 핵심 교육과정(ECC, Expanded Core Curriculum)은 시각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일반 교과 외에 추가로 습득해야 하는 필수 기술 체계로 미국에서 처음 고안되었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며, 구체적으로는 보상적 기술, 보행 훈련, 사회적 상호작용 기술, 독립생활 기술, 여가 및 레크레이션, 진로 및 직업교육, 보조 공학 활용, 시기능 훈련, 자기 결정권 등 총 9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