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천안의 젊은 향토사연구자를 찾아라

[조한필의 視線] 천안의 젊은 향토사연구자를 찾아라

남산공원 옆 천안지역사전시관에 26일 열리는 ‘천안향토사 연구 회고와 전망’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안지역사전시관

 지난 6월 남산공원에 세워진 천안지역사전시관이 향토사 연구의 요람이 되고 있다. 지난달 이곳에서 ‘천안 역사인물로 본 한국사’ 5연속 강의한데 이어 오는 26일 ‘천안향토연구 10년, 회고와 과제’ 발표를 하게 됐다.

 향토연구지 발간이 천안문화원 폐쇄로 중단됐다가 8년만인 2014년부터 『천안향토연구』 이름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구본영 전 시장의 배려에서 출발했다.

 임명순, 김종식 선생과 함께 11년째 책 편집을 하고 있다. 매년 10편의 글을 모아 발간한다. 그런데 필진 10명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는 8편에 그쳤고, 올해도 10편을 채우지 못했다. 집필자 대부분이 나이 70세 안팎의 분들이다.

 천안 인구 70만명으로 늘었지만, 20여 년간 향토사 연구자는 늘지 않았다. “살기가 각박해져 관심 돌릴 여유 없다.” “외지인이 많아져 향토애가 사라졌다.” 이유도 여러가지다. 무엇보다 기존 연구자들이 후진 양성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향토사 연구가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인지 알려야 했다. 향토사는 고리타분한 어르신들이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 곳으로 여기지 않게 해야 한다. 자신의 연구 방법을 차분히 일러주고, 성과를 낸 경위도 체계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향토사하기가 인터넷 발달로 수월해졌다. 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개인문집 등 조회가 간편하다. 올해 천안중앙도서관에 천안학자료관도 만들어졌다. 

 향토사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역사 현장에 있으니 1차 자료 접근이 쉽다. 물론 눈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열정은 필수다. 그러면 자연스레 관심 주제가 생긴다.

 그 주제를 파다보면 글감이 떠오른다.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하면서 논제를 정하고, 관련 자료 찾는 노력을 펴면 된다. 글을 쓸 때는 논리적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향토사 발표 공간은 찾아보면 많다. 지역 언론도 있고, 천안의 두 문화원 문을 두드려도 좋다.

 2010년대 초반이었다. 천안박물관 기획전에 어떤 분이 수십년간 쓴 일기책이 전시됐다. 성환 안궁리 김갑인(1914~1976)씨가 38년간 쓴 일기다. 20대 중반부터 사망 직전까지 썼다.

 저 일기 속에 무슨 내용이 있을까? 꼭 들여다 보리라 다짐하던 차, 2015년 5월 실행에 옮겼다. 김씨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이었을 6·25전쟁 시기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박물관 배려로 몇일 간 ‘출근’해 볼 수 있었다. 국한문 혼용체인데다 아직 한글맞춤법이 통일되지 않아 읽기가 어려웠다. 노트북에 입력하면서 수정을 거듭했다. 무슨 글자인지 모르다가 뒷부분에서 그 글자를 알게 됐을 때 뛸듯이 기뻤다. 막힌 데가 한 순간에 뚫렸다. 향토사 연구자로서 한 농민의 내밀한 사적 생활을 살필 수 있는 특권이었다.

 김씨는 37세 때 6·25를 맞았다. 늦은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논에 물을 대랴, 일손을 구하랴 정신이 없는데 전쟁이 났다. 농기를 놓치면 가족이 굶는다. 절박한 상황인데 피난민은 내려오고... 7월 1일 보리로 연명하려 방아 찟기 위해 정미소에 갔는데 전기가 끊어졌다고 한다. 짜증이 났다.

 “비가 쏘다진다. 비행기·총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북편(北便)이 이기는가 남편(南便)이기는가. 어느 쪽이 승리를 할는지 일반 민가는 가슴만 설레일 뿐이다. 살는지 죽을는지 제반사에 마음이 없다.”

 김씨 가족을 찾는데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경노당에서 김씨 딸(당시 3세, 평택 거주)의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딸에게 일기 속 내용을 전해줬다. “아버님이 이발하러 성환읍에 가면, 막내딸 사탕은 꼭 잊지 않고 사왔다.” 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해 천안향토연구 2집에 ‘성환농민 김갑인씨가 겪은 6·25’를 실을 수 있었다. 

 향토사는 지금 단계에서 연구 증진보다 젊은 연구자 물색이 더 급하다. 몇 일 전, 천안시청 문화답사 동아리 리더에게 부탁했다. 그 모임에 향토사 관심 있는 분 있으면 알려달라고. 어떡하든 향토사 맥 이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천안·아산 선임기자

성환 농민 김갑인의 1950년도 일기책 표지(왼쪽)와 천안지역사전시관 ‘천안향토사 연구 회고와 전망’ 알림 포스터.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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