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한복판, ‘인민반’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기술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평양 한복판, ‘인민반’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기술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인민반 일상‧경제생활 분석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교구아파트 인민반 23세대를 분석했다. 교구동은 영광거리 일선도로에 있으며, 김책공업대학이 뒤에 있다는 번화가다. 

북한에서 인민반은 북한 사회의 최말단 행정조직으로, 구역행정위원회, 동 사무소, 지구인민반장, 인민반장의 체계를 가지고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인민반은 20~30가구로 구성되며, 인민반장은 주민들의 생활을 감독하고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인민반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세대가 있다면 각 세대들이 십시일반으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나누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평양시 인민반 분석을 통하여 주민들의 경제활동과 가계소득 구조, 인민반 생활총화와 숙박검열을 통한 통제, 인민반 노력동원과 사회적 부담을 중심으로 일상 경제생활을 분석한다.

2. 평양시 중구역 인민반 23세대 조사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인민반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일일 기준으로 다른 구역은 3~6시간만 전기를 사용하지만, 이곳 인민반은 22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북한에서 대단한 특권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 사정은 2시간 정도만 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 욕실에 큰 물통에 물을 저장해 두고 써야 한다. 난방 연료는 전기를 사용하고 있고, 취사 연료는 연탄이나 가스통을 사용하고 있다. 

인민반 경제생활을 살펴보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공식소득과 비공식소득의 비율과 가계소득에서 기여도를 남편과 아내의 비중을 분석했다. 공식소득은 월급과 배급을 비공식 소득은 시장경제를 통한 소득을 상정했다. 

마지막으로 세대주의 나이, 북한 주민들이 생각하는 인민반 각 세대의 계층을 설문했다.



3. 인민반 경제활동과 가계소득 구조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공식, 비공식소득 비중]

북한의 공식 경제는 세대주인 남편들이 담당한다. 남편들은 기관이나 기업소에 출근해야 하며, 출근하지 않을 경우 노동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소의 낮은 가동률로 인해 실질적인 경제활동은 제한적이다. 월급은 북한 돈 3000~5000원으로 쌀 1kg도 살 수 없는 금액이다. 배급 또한 한 달에 15일 정도 분의 쌀이나 옥수수를 주지만 질적으로 떨어져 가축 사료나 가난한 농촌지역으로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들도 비공식부문을 담당하는 세대도 있지만 대부분 아내들은 비공식 경제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비공식 부문의 활동은 주로 시장에서 물품을 판매하거나 가내수공업, 가내서비스업, 뇌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인민반 조사 결과는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비중으로는 17%, 83%의 결괏값을 얻었다. 공식적인 소득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며, 비공식 소득으로 대부분 살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가계소득에서 기여도는 남편과 아내의 비율로 각각 37%, 63%로 분석됐다. 다른 지역에 비해 남편의 직업이 전문직이어서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가내수공업 및 서비스업과 시장 활동]

가내수공업은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주요 경제활동 중 하나다. 특히 여성들이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번 조사한 인민반에서는 3호 음식장사, 10호, 11호 옷가공업, 14호 가내 한의원, 15호 국수생산에서 가내수공업을 통하여 경제활동을 영유하고 있음을 확인됐다.

개인들의 전문적인 직업과 연결된 가내 서비스업으로는 2호 운수업, 4호 가내 수학학원, 6호 잡화장사, 9호 간부뇌물, 12호 피아노 학원, 13호 생선장사, 16호 물품도매업, 17호 식자재공급, 18호 음대입시학원, 19호 주유소, 20호 수산물도매, 21호 신발도매, 23호 담배장사가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비공식 경제활동은 전체 가계소득의 약 83%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인민반 중·상류층의 가계부 기록]

평양시 중구역 인민반 23세대 분석결과 중류층이 13세대, 상류층이 10세대, 하류층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민반에서 1호 고급의류장사, 5호 중구시장 의류장사, 6호 잡화장사, 7호 자녀도움, 9호 간부뇌물, 10호 옷가공업, 11호 옷가공업(양복), 13호 생선도매장사, 14호 가내한의원, 15호, 국수생산 및 도매업을 하는 세대가 중류층으로 조사되었다. 중류층의 직업은 주로 시장과 관련된 가내수공업과 가내서비스업이 주가 되었다.

다음으로는 상류층은 3호 1층에서 음식장사, 4호 전문직으로 치과의사, 소학교교사로서 가내 수학학원업, 8호 부모도움, 12호 피바다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학원, 16호 무역선 배, 17호 호텔식자재공급소, 21호 연락소근무, 신발도매장사, 22호 대학교수, 가내양복점, 23호 연락소근무, 시장담배장사 세대가 속한다. 상류층은 식자재, 신발, 담배와 같은 핵심적인 필수품을 도매하거나 권력 있는 직업과 8학군과 관련된 입시학원, 피아노학원에 종사하는 가계가 해당됐다.


위 그림처럼 중상류층의 가계부 조사로는 보통 한 달에 1,000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계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순서로는 간부뇌물이 300~500달러로 제일 높았고, 그다음이 긴 겨울을 나는 석탄비 200달러, 식대 150달러, 학원비, 택시비, 외식비, 사우나비가 각각 100달러가 소요됐다. 서울 강남에 사는 중상류층과는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면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인민반 생활총화와 숙박검열을 통한 통제

[생활총화를 통한 통제]

생활총화는 주민들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집단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회의로,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인민반에서는 주로 여성동맹에서 조직 생활과 사상 생활을 통하여 통제와 세뇌교육을 실시한다.


[인민반 숙박검열을 통한 통제]

인민반장은 북한의 ‘인민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인민반장은 주민 이동, 전출, 위생, 문화, 노력동원, 사상교양, 환경정리, 공공주택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인민반장은 주로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두 여성들이 맡으며, 일정 수준의 지식과 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인민반장은 생필품 배정 및 공급 권한도 일부 가지고 있다.

숙박검열은 북한에서 주민들의 숙박 상황을 점검하는 제도로, 주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주요 명절이나 비상 상황에 실시된다. 숙박검열은 불시에 진행되며, 인민반장과 보안원이 함께 가정집이나 여관 등을 방문하여 손님의 숙박 여부를 확인한다. 검열 시 등록되지 않은 외부인이 발견되면 안전부로 연행될 수 있다. 

인민반장들은 숙박검열 정보를 미리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친분이 있는 집에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불시 검열 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단속에 걸리기도 한다. 

단속은 보통 인민반장과 안전원 3명이 실시하는데 평양시민증이 있는지, 도둑전기(밥가마, 전기장판)는 쓰는지, CD 남한 드라마를 보는지, 강도질이나 도둑질이 있는지, 불륜이 있는지를 불시에 검문을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뇌물(북한 돈 약 15만원)을 받아 가기 위한 수단이다.

5. 인민반 노력동원과 사회적 부담

인민반은 주민들을 다양한 사회적 동원과제에 참여시키고 있다. 이는 마당청소, 위생활동 등 지역 사회를 위한 노동을 포함하고 있다. 

인민반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다양한 경제과제 수행을 위해 주민들을 동원한다. 이는 주로 지역사회의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집단적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공식적인 세금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부담을 지고 있다. 생산 외적 조직 활동 참여는 물론이고, 각종 기부와 공공사업 참여 등이 요구된다. 이러한 부담은 주민들에게 큰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하며, 인민반 중심의 사회동원 체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6.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데 필수요소


평양시 인민반의 일상·경제생활은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형성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 가내수공업 및 가내서비스업과 시장 활동, 전문 직업을 통한 시장 활동, 생활총화와 숙박검열 같은 집단주의적 활동은 북한 체제 유지에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민반 주민들은 생존 전략을 모색하며, 이는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민반의 일상·경제생활 분석은 북한 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며, 향후 변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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