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천천히 늙기로 결심하다 [쿠키청년기자단]

MZ, 천천히 늙기로 결심하다 [쿠키청년기자단]

베리류와 잎채소가 들어간 저속노화 샐러드. 사진=프리픽

MZ세대 사이에서 ‘저속노화 식단’ 레시피 공유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등장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저속노화 식단’은 20~30대 사이에서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저속노화 식단이란 단순당류나 정제곡물 대신 채소나 통곡물, 견과류 등을 먹어 노화를 늦추는 식단이다. 포화지방이 높은 음식은 자제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 식물을 먹는다. 딸기, 블루베리 같은 베리류와 시금치, 청경채 같은 푸른잎채소가 중요하다. 항산화 물질과 풍부한 비타민이 노화를 늦춰주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저속노화 식단은 신선한 샐러드나 조미료를 넣지 않은 구이 요리 등이다. 가공하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구입과 보관이 번거롭다. 평소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다면 저속노화 식단의 맛이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MZ세대의 저속노화 식단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직장과 학업에 시달리느라 망가진 일상에서 식습관만이라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정 교수가 지난달 4일 만든 X(구 트위터)의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는 개설 하루 만에 가입자 만명을 넘겼다. 정 교수는 이 커뮤니티를 ‘피난처’로 명명했다. 그는 SNS를 통해 “밖에 나가면 온통 가속노화 음식을 팔거나 이를 광고한다”며 “이런 것에 자주 노출되면 가속노화 음식에 익숙해진다”고 커뮤니티를 만든 이유를 밝혔다.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가입자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인증하거나 레시피를 공유하며 꾸준히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한다.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않은 SNS 이용자들도 공유된 게시물을 보고 식단을 시작하기도 한다. 게시물을 공유하고 소비하는 이용자 대부분이 20~30대 학생 혹은 직장인이다. 

보구미씨의 ‘저속노화 마라볶음밥’. 이처럼 자극적인 음식의 재료를 바꾸면 비교적 쉽게 저속노화 식단을 시작할 수 있다. 단순 탄수화물은 통곡물이나 단백질로 대체하고, 달거나 짠 양념은 무가당이나 제로 감미료를 이용한다. 보구미씨 제공

1년째 저속노화 식단 중인 보구미(20대·여·닉네임)씨는 저속노화 커뮤니티를 통해 ‘자극적이지만 건강한’ 레시피를 공유한다. 정석은 아니지만 맛과 영양을 모두 챙겨 저속노화 식단에 대한 장벽을 낮췄다. 보구미씨는 가장 추천하는 요리로 ‘마라볶음밥’을 내세웠다. 마라볶음밥은 원래 마라소스에 설탕과 버터, 고기, 굴 소스 등을 넣어 볶아먹는 자극적인 중화요리다.

보구미씨의 마라볶음밥은 식재료에 변화를 줬다. 가장 중요한 마라소스는 유지하면서 지방과 당분이 들어간 조미료는 제외했다. 밥도 그냥 쌀밥을 쓰지 않았다. 렌틸콩 50%, 현미 20%, 귀리 30% 비율로 저속노화 밥을 만들어 야채, 버섯, 계란과 함께 볶는다. 보구미씨는 이 요리를 “자극적이면서도 저속노화가 돼 입문용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저속노화 식단을 시작하고 싶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끊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레시피다. 

보구미씨는 저속노화 식단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다들 바쁘고 힘들게 살다 보니 자극적인 가공식품을 먹고 술을 마시는 등 원초적 쾌락을 좇게 된 것 같다”며 “그런 식으로 본인을 위로하는 습관이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또한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공유하는 건 어떻게든 더 좋게 살아보려는 노력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전수진씨가 커뮤니티에 공유한 ‘전자레인지 야채찜’. 전수진씨 제공

회사원 전수진(30대·여)씨는 커뮤니티에 ‘전자레인지 야채찜’ 요리를 자주 올린다. 조리가 간편하면서도 도시락으로 갖고 다니기 편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도 해 먹기 좋다. 우선 실리콘 용기에 먹기 좋게 자른 야채와 고기, 두부를 담는다. 그 위에 소금이나 후추로 적당히 간을 해준다. 반드시 소금이나 후추일 필요는 없다. 쌈장이나 고추장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쯔유(일본식 육수)와 들기름을 넣기도 한다. 취향에 따라 레몬즙만 살짝 뿌려주거나 발사믹 소스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양념한 재료들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8분 정도 돌려주면 완성이다. 전씨는 “전자레인지 돌리고 집 정리 한 번 하면 조리가 끝난다”며 레시피의 간편함을 강조했다.

전씨는 MZ 사이에서 불고 있는 저속노화 식단 인증 열풍에 대해 “기존 SNS 이용자들이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트렌드가 바뀐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저속노화 식단 인증 유행은 (저속노화 식단이) 유병장수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밝혔다.

히트씨가 직접 만든 저속노화 도시락. 히트씨 제공 

로스쿨에 재학 중인 히트(31·여·닉네임)씨는 주기적으로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한다. 건강 유지를 위해 식단을 시작할 무렵, 히트씨의 가장 큰 고민은 “뭘 해 먹어야 하지?”였다. 밋밋한 맛, 제한된 식재료로 어떤 요리를 해야 질리지 않고 계속 식단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히트씨는 방학을 활용하기로 했다. 학기 중에 관심 있는 요리나 레시피가 생기면 이를 컴퓨터에 저장한 후, 방학이 되면 하나씩 시도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요리하는 것을 넘어 조리 시간이 길진 않은지, 맛은 어떤지, 내 몸과 잘 맞는 영양소로 구성돼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그렇게 만든 요리를 커뮤니티에 올리면, 히트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게시물을 보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히트씨는 요리하며 “더 많은 저속노화 레시피가 알려져야 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자신의 레시피를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양한 저속노화 요리를 알리고, 본인 역시 다른 누군가가 올린 레시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히트씨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활동하는지 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며 “음식 사진과 레시피를 공유하는 활동이 동기부여가 돼 더 지속적으로 식단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darang1220@naver.com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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