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피해자 자격

[친절한 쿡기자] 피해자 자격

가수 김건모씨의 성폭행 의혹을 두고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사건 개요는 대략 이렇습니다.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는 지난 6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김씨가 과거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강 변호사는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 A씨를 대신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김씨 측은 ‘거짓 미투’라며 무고죄로 맞고소에 나선 상황입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이 사건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A씨의 직업을 두고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A씨는 유흥업소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A씨가 일하던 곳에 김씨가 찾아왔고, 그곳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게 A씨 측의 주장입니다. 이 사건의 진위여부를 따지려면 수사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니 현재 김씨도 A씨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건 A씨를 바라보는 여론의 폭력적인 시선입니다. 그 예로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김씨 관련 기사 댓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술집 접대부인데 강간이 어떻게 성립되냐” “유흥업소 종사자는 성관계가 업무 아닌가?” “술집 여자 입에서 성폭행이라” “업소 여성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냐” 등의 글이 주를 이루네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폭행, 협박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간음하는 걸 우리는 강간이라 정의합니다. 강제적인 성관계는 성폭행이고, 그건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범죄입니다. 즉, 업소 여성이라고 해서 성폭행해도 된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05년 김영란 당시 대법관은 노래방 도우미 여성과 성관계 시도 후 강간죄로 고소당한 남성에 대해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 협박 등 강제성이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며 1·2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강간죄가 인정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례였습니다. 그 이후 유흥업소 직원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서 본격적으로 유죄 선고가 내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업을 잣대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거나 성폭행 여부를 재단하는 시선은 고스란히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됩니다. 그들이 떳떳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인간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범죄에 있어 피해자들이 갖춰야 할 자격이라는 건 없습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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