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1)
[인문학으로의 산책] 최금희의 그림 읽기(128)

[인문학으로의 산책] 최금희의 그림 읽기(128)

재즈 시대를 정의한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승인 2026-07-06 09: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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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Zelda Sayre Fitzgerald, 미국, 1900~1948), 서커스, 1938년경, 캔버스에 유채, 92.1x61.6cm, 작가 기증, 1943.5, 몽고메리 미술관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Zelda Sayre Fitzgerald, 미국, 1900~1948), 서커스, 1938년경, 캔버스에 유채, 92.1x61.6cm, 작가 기증, 1943.5, 몽고메리 미술관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1900~1948)는 흔히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로 기억되지만, 그녀 자신도 소설가, 화가, 무용수로서 독자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22년부터 1934년 사이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장편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Save Me The Waltz, 1932]와 희곡 [스칸달라브라, 1933]를 남겼다. 잡지에 단편소설 10편과 산문을 기고했고, 사후에는 미발표 원고 8편이 발견되었다.

젤다는 20대 중반 발레에 몰두해 4년 만에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고, 1934년 뉴욕에서 회화 작품전을 열었다. 그러나 1940년 스콧이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다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두 번째 장편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1948년 하이랜드 병원 화재로 생을 마감했다.

1970년 낸시 밀퍼드의 평전이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며 젤다는 재조명되었고,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스콧의 이름으로 출간된 작품들에 젤다의 기여가 크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그녀는 재즈 시대의 주요 작가로 다시 평가받았으며, 1992년 앨라배마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젤다는 정신병원에서 미술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는데, 대표작 <서커스>는 입체주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인체와 파편화된 평면을 보여준다.

그녀의 스타일은 파리에서 접한 큐비즘과 표현주의의 절충이었다. 1924년 머피 부부를 통해 피카소, 콕토, 레제 등 모더니스트들과 교류했고,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 무용단과도 연결되며 아방가르드 무대 디자인에 가까워졌다.

젤다의 그림이 지닌 치료적 가치는 종종 언급되었고, 그녀의 예술은 결국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창작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젤다 피츠제럴드, 루이 14세 스타일의 종이 인형 오리기 세트와 여인
젤다 피츠제럴드, 루이 14세 스타일의 종이 인형 오리기 세트와 여인

젤다는 딸 스코티와 손주를 위해 종이 인형과 수채화 옷을 제작했는데, 이는 역사와 동화 속 인물을 기괴하면서도 섬세하게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스콧은 교육적 가치와 출판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1900~1948), 출처: 위키피디아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1900~1948), 출처: 위키피디아

젤다는 1925년 겨울 카프리 섬에서 처음으로 정식 미술수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서커스>의 불룩한 근육을 가진 몸은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길게 늘어져 있다. 그녀는 과장되고 두드러진 발과 손에 대해 “발레 무용수가 춤을 춘 후 느끼는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생생하고 표현력 넘치는 색채는 장난스러움을 암시하는 반면, 고통스럽게 뒤틀린 몸들은 작가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마도 병으로 인해 더욱 강해진 그녀의 강렬한 성격은 평생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졌다. 1934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는 젤다가 제안한 “때로는 광기가 지혜다”라는 제목으로, 13점의 회화와 15점의 드로잉이 공개되었다.

나는 뉴올리언즈에서 스콧이 쓴 단편 소설로 만든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촬영한 저택을 찾았다. 젤다가 그린 그림을 몽고메리 미술관에서 발견하고, 부부가 살았던 집을 방문하며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써야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출처: 뉴요커
무라카미 하루키, 출처: 뉴요커

한편 스콧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 1925]는 젤다와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제목이 확정되었다. 일본어 판을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개츠비를 높이 평가하며, “세 번 읽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대사를 통해 스콧을 상찬했다.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로 분한 1974년판 <위대한 개츠비>, 출처 나무 위키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로 분한 1974년판 <위대한 개츠비>, 출처 나무 위키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 혹은 ‘광란의 20년대’는 찬란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전쟁 후 경제 호황과 소비문화의 확산, 재즈와 자유분방한 생활양식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불평등, 도덕적 해이, 그리고 곧 닥칠 대공황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려낸 개츠비는 바로 이 시대의 화려함과 허무를 압축한 인물이다. 그는 사랑과 성공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지만, 그 꿈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달러를 대신하는 초록빛 등대는 희망의 상징이자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이었다.

개츠비의 비극은 단순히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시대 자체의 붕괴를 예고하는 메타포였다. 재즈 시대가 순식간에 꺼져버린 이유는 바로 그 화려함이 실체 없는 거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그는 시대의 허무를 온몸으로 살아낸 인물이었고, 그 불가능한 꿈을 끝까지 붙잡으려 했기에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하다.

결국,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성공담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낸 시대의 초상이다.

재즈 시대(1920~1929)는 전쟁이 남긴 허무함,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금주법이 버무려져 탄생했다. 일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자 젊은이들은 기존의 도덕, 전통적인 가치관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전쟁의 공포를 겪은 세대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Carpe Diem)”라며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지하 바(Speakeasy 스피크이지), 출처: 덴 매거진 ©르챔버
지하 바(Speakeasy 스피크이지), 출처: 덴 매거진 ©르챔버

1920년 미국의 금주법은 ‘도덕적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상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렀다. 술을 금지하자 사람들은 오히려 은밀한 지하 바, 즉 스피크이지(Speakeasy)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울려 퍼진 음악이 바로 재즈였다.

흑인 문화에서 태어난 재즈는 금주법 시대의 반항과 자유를 상징하며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밀수와 불법 금융으로 하루아침에 부를 쥔 신흥 부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화려한 삶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생생히 담겼다.

재즈 시대의 상징인 플래퍼, 출처: 위키피디아
재즈 시대의 상징인 플래퍼, 출처: 위키피디아

참정권을 얻은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짧게 자른 보브컷에 무릎이 보이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재즈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이 신여성들을 ‘플랫퍼’라고 불렀으며, 영화 속 데이지나 조던 베이커가 바로 이들의 전형이다.

결국 젤다와 스콧의 삶, 그리고 재즈 시대는 화려함과 허무, 창조와 파괴가 교차한 불꽃 같은 순간이었다. 개츠비의 비극은 바로 그 시대의 그림자였고, 젤다의 예술은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치열한 투쟁이었다. 

존 슬론(미국, 1871~1951), 렝가네시(Ranganeschi’s)의 토요일 밤, 1912,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슈티튜드
존 슬론(미국, 1871~1951), 렝가네시(Ranganeschi’s)의 토요일 밤, 1912,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슈티튜드

뉴욕의 유명했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번쩍이는 샹들리에 아래, 중앙 테이블에 남성이 동반하지 않은 채 노동계급 여성 세 명이 앉아 있다.

슬론은 화려한 상류층 대신,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들인 거리의 노동자, 이민자, 그리고 이제 막 ‘혼자서도 시내에 나올 수 있게 된’ 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들은 편안하게 다리를 의자에 걸치고, 새끼손가락을 치켜들며 수다를 떨고 있다. 손가락질 받을 행동이었지만, 슬론은 그걸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 이야말로 도시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듯, 자유로운 붓질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림 속 여성들은 ‘예절’보다 ‘자유’를 선택한 첫 세대였다. 그들이 레스토랑 중앙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뉴욕이라는 도시가 새로운 시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선언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슬론의 그림이 의미가 있다.

이 시대의 열기는 넷플릭스 <더 크라운> 시즌 6에서도 재현된다.

19세의 엘리자베스 공주가 2차대전 승전일 밤 재즈에 맞춰 춤을 추며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라 회고한 장면은, 재즈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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