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5일 (5)
염혜란 “4·3 사건 다룬 ‘내 이름은’, 이렇게 투자받기 힘들 줄 몰랐죠” [쿠키인터뷰]

염혜란 “4·3 사건 다룬 ‘내 이름은’, 이렇게 투자받기 힘들 줄 몰랐죠” [쿠키인터뷰]

영화 ‘내 이름은’ 주연 배우 염혜란 인터뷰

승인 2026-04-16 06:00:09 수정 2026-04-16 09:46:48
배우 염혜란.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제공

“정지영 감독님이 만든다고 하시면 분명 쉽게 (자금이) 모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투자받기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죠.” 배우 염혜란이 1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털어놨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내 이름은’ 제작 과정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보리밭에서 펼쳐진 독무 신을 찍으면서 자그마치 1년을 넘겼단다. 그는 “당시 영화계가 너무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문제인가’ 생각도 했었다”고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이름은’은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세 아들 영옥(신우빈)과 까맣게 잊힌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의 궤적을 쫓는다. 이들 모자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5·18 민주화운동까지 다소 무겁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작품의 당위성이 확실하다고 해도 배우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염혜란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성이 강할 때 부담스러운 것 같다. 이 작품은 그 뜻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더 서정적이고 문학적이었다. 이름으로 풀어가는 상징성이 좋았다”고 말했다.

배우 염혜란. 렛츠필름, 아우라픽처스 제공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는 유독 긴 편이다. 텀블벅 펀딩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모두 실었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 유치가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 영화가 끝내 완성됐음을 시사한다. 염혜란은 “(펀딩 참여자들이) 본인의 이름이 나올 때 ‘저도 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외치면서 손을 드는 장면이 그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를린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는데 보통 처음에는 내 연기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엔딩 크레디트를 보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때 울었다”고 덧붙였다.

극중 정순은 당대 국가폭력의 자명한 피해자인 동시에 의도치 않은 가해자이기도 하다. 정순의 정신과 담당의 희라(김규리)는 정순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선인이면서 학교폭력 가해자 경태(박지빈)의 어머니다. 염혜란은 어떤 캐릭터든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이 작품의 ‘미덕’으로 봤다. 그는 “한 집 건너 경찰 가족, 군인 가족인데 누구는 또 피해자 가족이다. 감독님이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라고 하셨다. 사건 자체가 큰 트라우마인데 ‘너 가해자였어, 피해자였어’라고 하는 순간 그 사건을 겪은 분들께 더 큰 트라우마를 주는 것”이라며 “(인물의) 레이어가 중첩돼 있다. 치우친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염혜란은 이 작품이 하나의 영화로만 존재하기를 거듭 바랐다. 그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4·3 얘기를 꺼내면 편견을 갖고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제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정지영 감독님과 치열하게 만난 작품으로 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때그때 제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찾아서 선택했다. 규정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며 “어떤 프레임으로 읽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실 이 지점이 굉장히 우려된다. 이제 78주기인 사건이다.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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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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