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안태환 리포트]

더 늦기 전에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몇 차례, 여타의 칼럼을 통해 피력한 의견이다. 그럼에도 달라질 게 없는 의료 환경이지만 현 제도의 혁신 없이는 안정적 국민 건강도 없다는 위기감이 커져가는 현실 속에 의료인의 사명감이라 해두자. 

잘 알려진 대로 우리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질 높은 의료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국가이다. 이른바 천조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경우,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비싼 의료비용이 사회적 문제가 된지 오래이다.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택한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내면은 고약하다. 어지간한 응급상황이 아니면 인내심의 한계 속에 진료를 무한정 기다려야만 하는 일상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이라 평가받는 선진국으로 비약적 성장을 한 우리는 의료 서비스는 국민들이 저비용으로 빠르게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의료 선진국이 되었다. 국민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치적이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이런 의료 시스템이 급격하게 붕괴되며 국민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돌아보면 고도성장의 목표 하에 의료정책도 앞만 보고 달려온 측면이 없지 않다. 의료시스템의 한계 봉착은 필연적이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철학과 흔들리지 않는 기조 속에 단단하게 여물어진 의료시스템이 아닌 선진국 의료제도의 모방이나 이식 수준의 대책으로 만들어진 제도였다는 뼈아픈 자성과 성찰의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추상적인 주장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응급의료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직시해야만 올바른 개선을 이룰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이해당사자의 충돌은 혼란 속에 나아가는 성장통으로 안고 가야 한다. 선거 때에 표를 의식한 대중 추수주의적 이벤트성 정책이 아닌 거시적 의료제도 구현을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와 실효적인 재정 지원은 필수이다. 그러나 우린 너무 급했고 모래성을 쌓아갔다.

우리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저 부담, 저급여로 출발해 의료기간의 원가보상을 제대로 보완해주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수가 구조를 내재하고 있다. 이건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 항목으로 그 손실을 보전하도록 했지만 지난 정부의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라는 의료정책의 큰 방향은 수가 구조의 왜곡을 더더욱 확장시켰다. 의료소비자인 국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큰 부담 없는 의료 혜택을 선호하지만 비용 없는 복지는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의료기관의 손실에 대한 뚜렷한 보전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 피해는 스멀스멀 그리고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 자명하다. 간호사법 제정을 두고 사회적 혼란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의료정책에 대한 갈등은 역으로 의료 개혁의 적기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해집단 간의 이해충돌을 극복하고 의료 위기의 작금의 상황을 솔직히 드러내 공감대를 얻기 위한 국회의 노력, 국민들에게 필수의료를 안전하게 제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더불어 의료계가 합심해 보건 의료 분야의 변화와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파이를 키워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이익보다 큰 이익을 향한 노력들이 지속 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위한 성장판이다. 그러나 우린 그러한가.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의료계 내부의 갈등과 더불어 수가 제도의 왜곡, 전공의 편중 현상, 응급의료의 위기,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규제로 대표된다. 힘들고 어려운 분야를 전공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행여나 피치 못할 사고가 생기면 의료진이 형사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 의료시스템 속에서 보편적이고 환자 친화적인 의료 서비스의 안착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보건당국에게 고언한다. 현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체감하고 싶다면 의대 재학생들에게 선호하는 전공을 물어보시라. 대부분이 가능하다면 환자와의 접촉이 적은 분야, 의료사고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를 선호할 것이다. 뿌리 없이 성장해온 우리 의료제도의 현실이다. 오랜 시간 어렵사리 공부한 그들만을 탓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책임인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확충과 국민 건강권의 확대를 모두가 원한다면 이를 위해 투입돼야 하는 인력과 장비, 시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용의도 있어야 한다. 합리적 수가 구조의 개선과 의료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기피할 전공이 어디 있겠으며 중증응급환자를 진료, 입원, 수술하지 않으려는 병원은 또 어디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의료제도, 이제는 손을 봐야 한다. 오래된 통증은 국가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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