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아닌 자유 [안태환 리포트]

자율 아닌 자유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마스크 어원은 ‘마귀’라는 의미의 중세 라틴어 마스카(masca)에서 유래했다. 연극 용어로도 익히 알려진 ‘가면’이라는 페르소나(persona)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얼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리는 마스크는 원시시대 종교의식에서부터 현대의 패션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돼 왔다. 오래전 패션의 아이템이 되기도 해서 14∼18세기 유럽에서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하프 마스크(half mask)가 유행하기도 했다. 

누구나가 한 번은 읽어 보았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철가면’은 17세기 프랑스의 감옥에 철가면을 쓴 채 갇혔던 정치범을 배경으로 한다. 절대 권력에 의해 강제되어 ‘씌워진’ 철가면과 달리 할리우드 히어로물인 아이언맨을 비롯, 배트맨,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는 초인적 능력을 숨기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는 ‘가장무도회’는 본래의 내가 아닌 가공된 이미지로 여흥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변신의 수단이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자 마스크에는 불안과 익명성, 비대면의 그늘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평등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빈곤이 주는 경제적 격차, 차별과 배제가 천부의 권리인 인간의 생명권 격차로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 마스크 품귀현상과 가격 폭등으로 취약계층과 난민, 이주노동자 등은  마스크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한 장의 마스크로 몇 칠을 사용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천조국이라 불렸던 미국의 경우 사망자가 급증했고 70% 이상이 경제적 궁핍에 직면한 흑인이었다. 그렇게 마스크는 사회양극화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특별’했던 마스크가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후, 오래된 복장의 관습처럼 마스크는 일상이 되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부직포 조각에 불과한 마스크에 감염병의 경험, 한국사회 문화적 규범까지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그러나 모진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든든하게 지탱해 준 고마운 물건임은 틀림없다. 의학적으로 마스크의 방역 기능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끝나지 않는 역병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는 유효한 방어책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스크는 생명에 대한 개인의 불안심리의 자기방어의 기제이다. 그 위로와 안심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마스크는 통제의 도구이기도 했다. 나아가 타인의 안전을 명분으로 자유를 억압한 유일한 복장이기도 했다. 무슬림 여성에 드리운 장막인 히잡 같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권위를 상징하는 양반의 갓 마냥 말이다, 한때 일부에서 모난 돌 마냥 삐죽하게 마스크를 쓰지 않을 권리를 제아무리 주창한들 돌아오는 대중의 반응은 ‘이기적 시민’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마스크 착용은 역병의 시대에 강력한 정당성을 그렇게 획득해갔다.

정부의 방역수칙 완화로 몇몇 특정 장소를 제외하고 이제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자율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율은 여전히 사회적 눈치에 포박당한 제한적 자유에 그치고 있다. 몇 해 동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의 시간은 자기검열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마스크를 벗어도 될까”라는 흐릿한 분위기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카페든 식당이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실제로 그 비율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수칙 완화라는 정부 정책의 수혜자로서 시민들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정작 해당 공간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마스크 착용의 강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익히 보이는 풍경들일 것이다. 아마도 고용주로부터의 지시에 의한 착용이 대부분일 것이다.  

마스크는 외부 바이러스로부터의 보호막이다. 입안으로부터 나오는 목소리를 막아서는 곤란하다. 혹시 모를 감염으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로서 고용주들의 충심을 이해하지만 관성과 통제의 의한 마스크 착용이라면 인권적 측면에서 대략난감이다. 자율 아닌 자유는 차별일 뿐이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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