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님은 제 어떤 점이 가장 좋으셨을까요? 유머 코드도 잘 맞았고 술도 좋아하는데…. 끊이지 않는 에너지 때문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영화 ‘호프’ 속 성애의 코어가 ‘선의’였다면, 이 인물을 연기한 배우 정호연(32)의 코어는 ‘에너지’였다. 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호연은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느릿하고 차분한 어조에 적당한 웃음기가 섞인 그의 화법에서 비롯된 매력이었다. 특히 자신의 노력은 담백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작품에 대해서는 더욱 진지했다. 왜 거장들이 아직 신인에 가까운 그를 ‘야생마’라 부르며 잇따른 러브콜을 보내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연기를 시작한 정호연은 스크린 데뷔작도 남다르다. 무려 10년 만에 나홍진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자 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호프’다. 그는 극중 호포항 출장소 순경 성애 역을 맡았다. 성애는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다. 칸 월드 프리미어 당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몇 명의 관객분들이라도 제 연기를 보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면 이 업을 계속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응원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호프’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오해와 불통으로 인한 인간과 외계인의 비극이다. 이러한 내용은 SF 액션 장르에 기반해 전개된다. 정호연의 분량 대부분도 액션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위해 그는 6개월간 준비했다. “수많은 액션을 수행해 내야 됐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았고 체력을 올리기 위해 유산소를 병행했어요. 총기 훈련도 받았고 수동 면허 취득 후 레이싱 전문가분들한테 드리프트를 배우고 연습했어요. 특히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다시 차에 오르기까지 이어졌던 총기 액션은 한 번도 끊지 않고 촬영했어요. 나홍진 감독님과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머리를 맞대고 다각도로 찍어주셔서 좋은 신이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분명 심각한 상황인데 성애는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물론 때때로 분통을 터트리지만 노기가 짙지 않고 아이처럼 해맑은 구석이 있어 이 작품에 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정호연이 해석한 인물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감독님이 성애의 코어가 인간의 선의에서 비롯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감독님께서 리딩 때 많이 하셨던 말씀은 ‘사랑스럽다’였고요. 화면에 나올 때도 청량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여기에서 힌트를 얻고 너무 무겁지 않게 직관적으로 살아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호프’는 인물의 말보다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물의 중요도와 무관하게 대사 자체가 적은 작품이다. 이 가운데 성애에게 주어진 대사는 유독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정호연은 오히려 계산하지 않고 연기하려 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담고 표현하려는 순간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력에 일부러 만들어낼수록 어긋날 수도 있고요.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셨다면 그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에요. 감독님 영화의 장점이에요. 의미를 부여했든 안 했든 정말 많이들 찾아주시잖아요. 감독님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정호연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처음 영화를 보실 때는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 그 에너지를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재미있고 통쾌하고 시원한 영화를 본다고 접근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 보실 때 의미를 찾아보시고 세 번 보면 또 새로운 게 찾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입장 차이로 시작한 일들이 비극이 된 경험이 있으시고 이를 목격한 순간도 많다고 인터뷰하신 적이 있어요. 인간을 넘어 만물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들 그리고 선의, 믿음, 정의, 희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 보실 때는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차기작은 김지운 감독의 ‘더 홀’이 될 전망이다. 첫 시리즈로 글로벌 스타덤에 오르고 스크린 데뷔작으로 칸까지 다녀오더니, 이젠 할리우드 배우 테오 제임스와 부부 호흡을 맞춘다. 출연 작품마다 스케일도 존재감도 상당해 체감하기 어렵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다작 배우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캐릭터를 넘어 본인을 다룰 때도 정호연은 계산하는 대신 내려놓는 방식을 택했다. “생각지 못한 큰 관심을 받아서 너무 감사했지만 동시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안했어요.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사로잡히니까 조급하게 결정 내리기보다 스스로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아쉬운 건 없어요. 장기전이니까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