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2일 (2)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0)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0)

축배를 드는 고트로 부인(중)

승인 2026-05-11 09:30:50
 


존 싱어 사전트, 건배를 드는 고트로 부인, 1882~83, 패널 위에 유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존 싱어 사전트, 건배를 드는 고트로 부인, 1882~83, 패널 위에 유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1883년 겨울, 하지만 고트로 부인의 초상의 진전은 더디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트로는 사교 모임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초상화의 포즈를 오래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여름, 존 싱어 사전트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브르타뉴의 저택을 찾았다. 연필, 수채화, 유화를 번갈아 가며 약 30여 점의 준비 드로잉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건배를 드는 고트로 부인〉이라는 유화 스케치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트로는 여전히 지루해 했고, 4살 된 딸과 어머니, 손님과 하인들을 챙겨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사전트는 결국 이렇게 토로한다.

“고트로 부인의 그림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절망적인 게으름.”
그는 그녀의 팔을 뻗은 모습과 투명한 시스루, 테이블 위 꽃다발을 빠른 붓질로 담아내며 저녁 빛 속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했다. 이때의 고트로는 부드럽고 인간적인 표정을 지녔다. 하지만 최종 작품에서는 그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대신 인위적인 안색이 논란을 불러왔다.

“낮에는 끔찍했다. 하지만 밤에는 정말 매우 아름다웠다”라고 화가 마리 바슈키드 채프는 일기에 적었다.

그러나 1884년 파리 살롱에 공개된 〈마담 X〉는 폭풍 같은 반응을 불러왔다. 관객들은 그녀의 외모와 자세를 두고 수군거렸고, 사전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 랄프 커티스는 “불쌍한 존은 상심했다”고 기록했다.

고트로와 그녀의 어머니는 눈물로 항의하며 그림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전트는 “나는 그녀가 입은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며 거절했다. 다만 그는 어깨 끈을 덧칠해 조금 더 단정하게 보이도록 수정했다.


<마담 x>의 미완성 복제품, 약 1884, 캔버스의 유채, 약 206.4 x 107.9 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마담 x>의 미완성 복제품, 약 1884, 캔버스의 유채, 약 206.4 x 107.9 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사전트의 신작 “마담 X의 초상”이 공개되자, 전시장에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반응은 싸늘했다.

고트로의 포즈는 르네상스와 고전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테이블 다리에는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이 장식되어 있고, 그녀가 쓴 초승달 모양의 티아라는 여신 디아나를 상징했다. 하지만 이 티아라는 화가의 의도가 아니라, 고트로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선택한 장식이었다.

관람객들은 그림 앞에서 웅성거렸다. “아, 저기 미인이 있네… 오 끔찍해라!”라는 조롱이 이어졌고, 신문 <레베르망>은 “인물의 저속한 표정에 충격을 받게 된다”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특히 고트로의 창백한 피부는 “시체 같다”며, 비난의 초점이 되었다.
 


작가 미상, 존 싱어 사전트 그림 사진 복제 앨범에 있는 “마담 X” 사진, 1884~85년경, 알부민 실버 프린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가 미상, 존 싱어 사전트 그림 사진 복제 앨범에 있는 “마담 X” 사진, 1884~85년경, 알부민 실버 프린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 사진은 1884년 살롱에 전시되었을 당시 마담 X의 모습을 담은 유일하게 알려진 사진으로, 드레스 끈이 오른쪽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사전트는 전시 작품 사진을 찍어 친구와 가족에게 보여주고 홍보 목적으로도 자주 사용했다. 이 앨범은 작가의 가족이 미술관에 기증했다.
 


카포랄(Caporal,19세기 후반 활동), “아름다운 X 부인의 초상“, [상업 미술 박람회 삽화 카탈로그], (파리: E. Bernard, 1884)에서 발췌
카포랄(Caporal,19세기 후반 활동), “아름다운 X 부인의 초상“, [상업 미술 박람회 삽화 카탈로그], (파리: E. Bernard, 1884)에서 발췌

풍자 잡지 <라 비 파리지엔>은 드레스가 흘러내리는 고트로를 캐리커처로 실으며, “멜리, 내 드레스가 흘러내리고 있어!”라는 대사를 덧붙였다. 그림의 관능미는 외설적 스캔들로 소비된 셈이다.

물론 소수의 비평가들은 사전트의 대담한 스타일을 높이 평가했다. “미래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파리 식 세계민주주의의 이상을 발견할 것이다”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전시 직후의 혹평과 스캔들은 그의 명성을 위협했고, 파리에서의 활동 기반을 사실상 무너뜨렸다. 당시 파리 살롱은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무대였는데, 대중과 언론의 조롱은 사전트가 더 이상 그곳에서 주문 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전트는 런던으로 이주해 미국과 영국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며 새로운 후원자들을 확보했다. <마담 X>는 한 화가의 경력을 위협한 스캔들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파리의 한계를 넘어 세계적인 초상화가로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아돌프 지로동(1849~1929), 마담 X의 그림과 함께 작업실에 있는 존 싱어 사전트, 1884년경, 알부멘 은화(Albumen silver Prin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아돌프 지로동(1849~1929), 마담 X의 그림과 함께 작업실에 있는 존 싱어 사전트, 1884년경, 알부멘 은화(Albumen silver Prin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884년 파리 살롱에서 공개된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 X >초상화는 당시 미술계의 ‘폭탄’이었다. 검은 드레스에 매혹적인 포즈, 그러나 흘러내린 듯한 어깨 끈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찬사보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사전트는 결국 어깨 끈을 다시 칠했지만,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그림을 자신의 스튜디오에 30년 넘게 간직하며 “내가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 자부했다.

1885년 런던으로 이주하기 전, 그의 파리 베르티에 대로 스튜디오에는 여전히 마담 X가 이젤 위에 걸려 있었다.

1915년, 샌프란시스코 파나마-태평양 박람회에서 사전트는 태도를 바꿔 <마담 X>를 전시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모델 고트로가 사망한 직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판매를 제안할 정도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 생전에 그녀와 갈등이 있었던 탓에, 그림이 그녀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치 않았고 결국 작품에 “마담 X”라는 중립적이고 신비로운 제목을 붙였다.

이 이름은 단순히 익명성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 자체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모델의 개인사와 분리된 채, 작품은 오히려 더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게 되었다.


202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존 싱어 사전트 서거 100주년 기념전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기획하여 100점이 전시되었다.
202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존 싱어 사전트 서거 100주년 기념전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기획하여 100점이 전시되었다.

사전트는 50년 동안 활동하며 900여점의 유화와 2000점 이상의 수채화를 남긴 당대 최고 화가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얼굴’을 그린 화가이다.

이 전시는 파리 시절 10년 동안 그려진 100점으로, 사전트의 초기 회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부터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예술적 야망, 기교보다 감각과 직관을 앞세운 자유로운 붓질, 아직 젊어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실험적 태도와 활력이 결합되어 그의 경력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대담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사전트는 모네나 르누아르와 교류했지만, 완전히 인상주의에 속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상주의적 기법을 흡수하면서도 자신만의 사실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구축했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초상화가가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맥락을 담아낸 진보적 예술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전시회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마담 X>
전시회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마담 X>

2025년 5월, 전시가 오픈하자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관람객이 몰려왔다. 특히 80대의 신사와 숙녀들이 유행이 지났지만, 한때 분명히 비싼 값을 치렀을 고급스러운 정장과 핸드백을 들고 진지하게 한 작품 한 작품 감상하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기품 있는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었다.

오늘날 <마담 X>는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당시의 논란은 오히려 작품의 전설을 더해준다. 미술사에서 실패와 조롱이 어떻게 시간이 지나 걸작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살다 보면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고통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더 나은 상황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반문했던 오만과 편견에서 자유로워 지기도 한다. 고통에 매몰되기 보다 바닥을 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행동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더 나은 세계를 펼쳐 보이기도 한다.

삶이란 참으로 오묘하고 신기하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림엔 당연히 화가의 삶이 투영되고, 사전트의 삶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기도 한다. <계속>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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