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건강보험 법정 지원금을 내지 않아 발생하는 건보 재정 손실 규모가 연평균 3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건보노조)은 통합 건강보험 출범 25주년인 올해 건보 재정에 경고등이 들어왔다며 차기 정부가 국가적 책임을 지고 건보 보장성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14일 밝혔다.
건보노조는 ‘민생경제 성장 도모를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 보고서를 내고 “현재 64.9%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회원국 평균인 76.3%로 끌어올리면 연 30조원의 가계 실질소득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건보 보장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이어져도 낮은 보장성에 발목을 잡혀 ‘정책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건강보험은 개인 보험료와 기업 보험료, 정부 지원금으로 분담되는데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정부가 매년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 상당을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보노조에 따르면 정부가 내지 않은 법정 지원금 규모가 연간 6조4534억원에 달한다. 건보노조는 “의료급여 재원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비용까지 건강보험에 떠넘기는 ‘무임승차’ 행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법정 지원금 지급 공백으로 발생하는 건보 재정 손실은 연평균 3조527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공무원 복지포인트에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아서 생기는 손실 640억원, 코로나19 당시 시행한 건보 부담 경감 조치에 따른 정부 부담금 미납액 2307억원이 발생했다. 또 의정갈등에 따른 비상진료체계 지원에 연평균 1조3490억원이 투입될 뿐 아니라, 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기관으로 인한 재정 누수는 1789억원에 달한다.
건보노조는 “이를 합산하면 간병비 급여 확대나 전 국민 치아 임플란트 건보 적용도 가능한 금액”이라며 “차기 정부의 건보 정책 최우선 과제는 건보 재정에 대한 국가 책임 준수다”라고 강조했다.
건보 재정 전망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더 어둡다. 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44.1%인 48조9011억원이었다. 전체 인구의 17.9%인 노인 인구가 건보 재정의 절반 가까이 사용한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이 2026년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측했다.
건보노조는 정부 법정 지원금 지급 공백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지원금 미납 시 다음 회계연도 내 정산 반납을 의무화하는 ‘건강보험 재정 정산조항’ 신설을 제시했다. 건보노조는 “지금까지 가계와 기업에 집중된 건보 재정 부담구조를 경제 3주체의 하나인 정부 책임으로 균형 있게 나누는 정립형 분담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정부 지원 기준을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에서 ‘전전년도 65세 이상 노인 급여비의 50%’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올해 정부 지원금은 약 18조7000억원으로, 가계·기업 부담 보험료의 21.3% 수준이 된다. 건보노조는 “차기 정부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국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 운용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건보 보장률을 지속해서 높여야 한다고 했다. 건보노조는 “건보 보장률이 1% 오를 때마다 2조6300억원의 소비 활성화 효과가 나타난다”라며 “건보 보장성은 도로나 항만, 공항 등 국가 기반시설보다 중요한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는 안전망이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