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언론들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꼽는 사안을 분류해보면, 경제문제와 직결 된 사회보장제도, 범죄율, 이민, 외교 사안과 비경제적인 이슈이지만 문화전쟁 (Culture War)이라 불리며 미 전역을 달구고 있는 낙태, 교육, 성소수자 정책이다.
미국 대선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economy! Stupid)'라는 문구를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터.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의 참모인 제임스 카블이 한 말인데, 선거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표심은 결국 경제 문제가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 모토로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아버지 부시)을 꺾고 당선됐다. 여전히 경제는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다.
여기에 트럼프 재임 시 임명한 3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 때문에 연방 대법원이 보수 6명 - 진보 3명의 구도로 바뀌면서 낙태 허용, 소수 인종 우대 등 진보적인 정책을 잇따라 위헌으로 판결한 사건이 문화전쟁으로 확산되면서 표심을 흔들고 있다.
낙태/교육
11월 8일 치른 미국의 중간선거(총선거)는 연방 선거가 없는 홀수 해인데다 선거가 있는 주가 많지 않아 해외 언론에게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하이오 주에서는 낙태 허용이 주민 투표에서 57%대 43%로 통과되었고, 2년 전 공립학교 교육 정책으로 열풍을 일으켰던공화당 영 킨 주지사의 버지니아 주에서는 주 상하원 다수를 민주당이 모두 차지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버지니아 주와 오하이오 주의 이런 투표 결과는 낙태 교육 범죄 등의 주요 이슈를 대하는 민주 공화 양당 지지자들의 민심을 가늠 해 볼 기회였다. 특히 이 2개 주의 선거 결과는 낙태 문제가 공화 대 민주 혹은 종교나 이념으로 나뉘는 이슈가 '여성의 신체 자유 선택권'이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재확인 시켜 주었다.
오하이오 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표밭이다. 주 상하원을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공화당의 낙태 반대 입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버지니아의 영 킨 주지사는 '비판적 인종 이론 (Critical Race Theory)'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2022년에 깜짝 당선이 되었고,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됐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인종 차별이 미국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의 사회 구도에 뿌리 깊게 박혀 형성되어 온 문제라는 관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 킨은 비판적 인종 이론이 백인 아이들을 가해자로, 흑인 아이들을 피해자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도 싫지만 흑인 우월주의자도 싫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영 킨은 자녀가 있는 중산층 백인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지난 해 주지사 선거에 승리했다. 그는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주 의회를 장악하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불법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이민
낙태 이슈에서 승리를 거둔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은 승리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자 선거 유세에 나서면서 전선을 반이민의 논쟁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문화 전쟁에서 경제 이슈로 전환하는 전략이었다.
총선거 이틀 후인 지난 10일은 재향군인의 날이었다. 뉴햄프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국경 강화는 물론, 불법 이민자 수색 및 대량 추방, 대형 수용소 건설을 약속했다. 또 마약사범 사형도 들고나왔다. 바이든 대선캠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극단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계획'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국에서 이민 문제의 전선은 더 이상 친이민-반이민 사이에 있지 않다. 반이민을 전재로 어느 수위까지 불법 이민자에 대처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민자들이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온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친이민 성향이라는 민주당의 정책 방향도 합법 이민 기회를 유지하거나 넓혀주자는 수준이지 미국 내 불법 이민자를 합법화하거나 관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2016년 대선 때 모두가 비웃었던 트럼프 후보자의 국경 장벽은 이제 모두가 당연시하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 미국의 남서부 국경을 넘은 불법국경통과자 수가 23만 명에 달했다. 이는 2022년 8월과 비교했을 때 14% 증가한 수치이고. 2023년 현재 아직 한 달 이상 남아있지만,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이미 100% 이상 불법 이민자 수가 증가하였다.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관용적인 이민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감과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한 국경 통제 정책의 따른 결과인데,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는 66%의 응답자가 더 높은 수준의 국경 강화 정책을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범죄율
캘리포니아, 뉴욕 등 대도시가 많은 주에선 범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 민주당 텃밭이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의 대도시에서 마약 관련 범죄가 심각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공화당은 경범죄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무죄로 석방하는 민주당식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처벌을 강화하고 강력범죄 교도소 신설, 범죄 소탕에 주방위군 동원을 주장하고 있다.
범죄율 증가를 민주당의 책임으로 묻는 것이 처음에는 공화당의 억지 같았으나. 실제로 민주당이 장악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경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정책 때문에 좀도둑이나 괴롭힘, 노상방뇨 등의 경범죄가 만연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교
미국은 현재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전, 중동에서 이스라엘-하마스전 이렇게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직접 파병은 하지 않았지만 무기와 경제적 지원으로 관여하고 있다. 정치인들과 백악관에게는 이 두 개의 전쟁이 골칫거리이지만, 유권자들의 셈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팍스 아메리카'는 더 이상 없다. 이념과 국제질서보다 외교나 무역정책을 통한 경제적인 파급효과에 집중한다. 즉 현재는 두 개의 전쟁이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유동적이다. 가령 우크라이나 전쟁에 들어가는 돈으로 국경 장벽 예산을 더 쓰자는 공화당의 주장이 그다지 억지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정치인들의 셈법에 일반 유권자들은 많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만약 전쟁이 중동으로 번저 유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유권자들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대 중국 외교는 경제 이슈이지만 두 당의 정책에 큰 차이가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반중국 전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밖에 사안들
LGBTQ, 사회보장 제도, 기후 변화와 같은 쟁점들도 유권자들이 주목하지만 위에 언급된 다른 사안들에 비해서 비교전 전선이 확실하다. 쟁점마다 민주-공화 지지자들의 구분이 뚜렷하기에 새로운 유권자층을 끌어들이거나 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확률은 적다.
대선을 1년 앞둔 미국의 정치도 한국만큼 극심한 양극화로 포풀러리즘, 감정 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역의 강성 유권자를 등에 업은 10명이 안되는 의원들이 의회에서 의장을 끌어내리고, 정부 예산안에 합의를 못해 '연방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 여부가 연일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 대립의 한가운데에는 정치인, 정당,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 유권자의 민생과 신념, 공동체의 가치를 건 정책 쟁점과 논쟁이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 조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주요 경합 주에서도 트럼프가 약간 우위라는 결과다. 반면 이달 8일에 치러진 총선거에서는 바이든의 민주당이 판정승을 거뒀다. 우열을 가늠하기가 아직 쉽지 않다.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