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손발이 묶여 있습니다 [특별기고]

교사들은 손발이 묶여 있습니다 [특별기고]

아이들도 안다. 요즘 교사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걸
정신과 다니는 교사가 늘어나는데도 학교는 무관심
권력 있는 학부모가 잘못일까 인권조례가 잘못인가
아이도 교사도 잘못된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인데
책임을 떠넘기는 비난보다 교사들의 절규를 들어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글을 보내왔습니다.지금의 사태를 두고 정부, 국회, 평론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현장 교사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사람은 드뭅니다. 함구하라, 아이들이 충격 받는다, 민원이 들어온다,이런 얘기 속에서 교사들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합니다.잠시 눈길을 돌려 현장교사가 절규하는 심정으로 쓴 글을 읽어주십시오. 누가 잘못인가 싸우기보다 무엇부터 고쳐야 할까 함께 고민하길 바랍니다.글쓴 분의 이름은 가명으로 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자살했다나봐요. ’

각종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인터넷엔 헛소문도 많기에 언론이 확인해주길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그날엔 어느 6학년 교사가 자기 반 아이에게 폭행당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교사들에겐 놀라우면서도 어쩌면 놀랍지 않은 뉴스였다. 이미 비슷한 일을 자주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교실이 이렇게 되었을까?

학교에 유명한 아이가 있었다. 뭐든지 제가 먼저 해야 하는 아이였다. 제 뜻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울고 소리 질렀다. 당연히 친구와 싸우게 되고 학생들은 그 아이를 피했다. 그 반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선생님들은 아무런 힘도 없어.’

그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고 친구를 괴롭히는데도 혼이 나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은 좋은 말로 상담만 하신다는 거였다. 

아이들의 얘기가 맞다. 지금 대한민국 교사에겐 수업 분위기를 흐트리는 학생이 있어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 조용하게 말로 타이르는 것 뿐이다. 다른 방법은 민원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말썽을 부리는 아이에게 엄격하게 말해도 민원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주었다고 항의한다. 아이가 같이 앉는 짝마다 괴롭히는데도 따로 앉히면 안 된다. 선생이 왕따를 조장했다고 한다. 어떤 교사는 아이를 따로 불러다가 연구실에서 상담을 했더니 “밀폐된 공간에서 위협감을 줬다”는 민원을 받은 적도 있다. 

대체 뭐가 허용되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자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면 대부분 ‘당신이 능력 없어서 그렇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교사들은 절망한다. 동료 교사들에게 호소하면 당연히 아픔을 같이하지만, 문제없이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위축이 된다. 관리자의 말대로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점점 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무력감에 빠진다. 그래서 찾는 곳이 정신과 병원이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며 덤비려고 했다. 말리려고 아이를 붙잡는데 내 마음 속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밀려왔다. 

‘강한 힘으로 아이를 제압하며 공포심을 자극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다른 아이와 싸우도록 내버려둘 수 없는 일. 아이를 붙잡고 말렸다. 아이는 계속 발버둥을 쳤다. 그 사이 담임교사가 달려와 둘이서 간신히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학교 환경에서 학습된 불안이 우리를 괴롭힌다. 자신 있게 교육할 수 없다. 교사들은 손발이 묶여 버렸다. 이런 생각으로 온종일 머리가 어지러운데 마침내 뉴스가 나왔다. 사실이란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쿵.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지 않은 교사가 없었을 것이다.

스물세살이다. 겨우 신규 2년차. 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학교를 선택했겠는가.

“선생님. 저 요새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요.”

얼마 전에 들은 동료 교사의 고백이 떠올랐다. 4시간 동안 소리 지르고 간 학부모 때문에 휴직에 들어갔다는 지인도 떠올랐다. 아이들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마음에 가득했던 신규 교사 시절도 생각했다. 가장 순수하고 의욕이 넘치는 시기에 있었던 젊은 교사가 얼마나 큰 절망을 느꼈기에 이런 일을 당했을까.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쿠키뉴스 자료사진


교사들의 공감과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추모의 행렬이 이어졌다. 슬프게도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맞고서야 세상에 대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마침내 어제, 7월 22일. 종로에서 전국적인 집회가 열렸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수업을 망치는 상황에 무기력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 악성 민원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사람이 좀 살게 해 달라. 그것뿐이었다.

더 구조적이고 심도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요구를 단순화했다. 정말 실제적인 정책이 나오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동시에 정치적인 세력이 끼어드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전선이 확대 되어 말로만 공방을 벌이다 끝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지금 사태가 흘러가는 양상을 보면 정말 걱정 된다.

서초동은 잘 사는 곳이고 법조인들 많이 사는 곳이니 권력을 가진 학부모의 갑질이 아닐까? 지금까지 고인이 자살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권력자가 압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이 난무한다. 모 국회의원의 손주가 다니는 학교란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고인의 죽음의 이유는 밝혀져야 한다. 사람들의 추측 중에 사실로 드러나는 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부모가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 꼭 강남이나 이른바 ‘학군지’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평범한 학부모조차 악성 민원인이 되는 이유가 있다. 교육 정책이 객관적이지 않은 잣대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교사를 그래도 되는 자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무고를 해도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놔두고 서초동이라는 지역에만 초점을 맞추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비난하고 주사파가 배후란 말까지 나왔다. 한숨이 나왔다. 현재의 일은 현재의 정부가 일단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데 책임을 통감한단 말 한 마디 없이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리며 단죄하는 위치에 서려고 한다.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에 직면해 새로운 분란을 만드는 정부. 과연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래서 정치적 문제가 되지 않기 바랐던 거였다.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다가 현장과는 동떨어진 해결책을 내고 손터는 상황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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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호소한다. 해결 방법은 교사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단순히 교사의 생존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해도 하지 말란 말 외엔 아무런 가르침을 받지 않는 않는 교실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겠는가?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는가? 우리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바르게 자라도록 제대로 가르치고 싶을 뿐이다.

또 한 가지 바란다. 학부모를 혐오하지 말아달라. 학부모 갑질을 진상 맘충으로 치환하는 얘기도 포털 댓글에 자주 올라온다.  학부모 역시 이 시스템의 희생자이다. 그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 역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교사들은 오직 교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나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더불어 젊은 교사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져 억울함이 풀어지길 바랄 뿐이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이승완 기자
fattykim@kukinews.com
이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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