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총기 규제는 정말 불가능할까? [쿠키칼럼]

미국의 총기 규제는 정말 불가능할까? [쿠키칼럼]

총기 사고로 한인 가족 희생
청소년 사망률 1위가 총기
막을 길 있어도 번번이 좌절
언제까지 로비 탓만 할건가
미국 유권자들이 행동해야

미국 헌법은 총기 소유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에 쇼핑몰에서 벌어진 총기 사고로 한국인 가족이 희생을 당해 6살 아이만 혼자 남았다는 가슴 아픈 뉴스가 있었다.

잊을 만하면 뉴스 헤드라인을 도배하는 미국의 총기 사고는 그 빈도와 강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에 사는 미국 시민으로서 가장 우려되는 일은 핵전쟁도, 경제난도 아닌, 총기 사고다.

민간인이 총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의 법적 근거가 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이렇다.

‘규율이 잘 서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

서부개척 시대에 ‘자유로운 안보’를 위해 만든 총기 소유권이 이제는 개개인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 헌법 문구가 21세기 현재 미국 사회에 적합한지 의구심이 든다.

안전 지대는 없다

총기 난사 사건과 총기 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통계로 4만800여 명, 인구 10만명당 14.6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했다.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사망원인 1위(3597명, 18.7%)로 교통사고(16.5%)나 암(8.1%)보다 훨씬 많았다. 10년 전인 2011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18.1%로 총기 사망자(11.4%)보다 많았던 사실과 비교하면 깜짝 놀랄 수치다.

거의 매주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TV에 나와 더 강력한 총기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 미국 사회에 총기 안전 지대는 없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도 총기 사고를 걱정해야 한다. 주말에 가족끼리 쇼핑이나 외식을 나서면서도 총기 사고가 없을까 불안하다. 공공장소에선 언제든 총기 사고가 날 수 있고 생각해야 한다.

총기규제는 제자리다. 지난 해 텍사스주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사망한 후 거의 30년 만에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이 통과 됐지만, 사고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1세 이하 총기 구매자의 신원 조회를 강화하고, 잠재적인 위험인물이 총기 소유를 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무차별 사격의 도구가 되는 AR-15 소총의 범퍼스탁 장착 모습.


알면서도 못 하는 총기규제

총기 난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사건 현장에 늘 등장하는 총기가 AR-15다. M-16이라고 불리고 한국군서도 사용했던 총과 같은 계열이다. 미국에서 민간인에게 파는 AR-15는 반자동 모드로 1분에 60발을 발사할 수 있다. 여기에 범프스탁이라는 장치를 붙이면 분당 450발을 쏠 수 있다. 당장 AR-15와 범프스탁만 판매를 금지해도 총기 난사의 강도를 현격히 낮출 수 있다.

연방정부는커녕, 가장 진보적이라는 캘리포니아주 마저 AR-15 판매를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번번이 수정헌법 2조에 발목이 잡혀 판매 금지가 위헌으로 판결 나거나, 연방 의회에서 법을 만들어 통과해야 한다는 결정을 재판부가 내리기 때문이다. 연방 의회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것처럼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가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총기 소유를 찬성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재임 때 58명이 사망하는 라스베가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범프스탁 판매를 금지했으나, 연방 항소 법원이 최근 범프스탁의 판매금지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총기사고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 경력이나 정신이상 등의 문제가 있는 개인이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게 하는 길도 있다. 미국에서 정상적으로 총기를 사려면 신원 조회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신원 조회를 피할 손쉬운 방법이 있고,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는 점. 흔히 '건쇼(Gun Show)'로 불리는 총기 박람회가 총기 소지에 우호적인 주의 중소 도시들에서 매년 축제처럼 열린다. 건쇼에서 이뤄지는 개인간 거래나 벼룩시장을 이용한 중고거래는 신분 조회를 피해 갈 수 있다. 심지어 미성년자도 건쇼에서 총을 살 수 있다. 불법 유통 총기의 3분의1이 건쇼에서 거래된다.

신원 확인 없이 총기 거래가 이뤄지는 건쇼 현장 모습.


총이 무서워 총을 갖는 사람들

총기 소유가 곧 자유이고, 총기가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 준다는 찬성론자들의 믿음도 총기 규제에 유의미한 진전이 없는 이유다. 그 믿음에는 수정헌법 2조가 법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규제가 번번이 수정헌법 2조 위배라는 이유로 발목 잡힌다.

인구가 많지 않은 중소 도시나 농촌 지역의 사람들은 야생동물이나 강도 같은 위협을 당할 때 경찰 같은 공권력에 즉시 보호를 받기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이미 총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보니 총기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기방어를 이유로 총기를 보유하기 시작했지만, 그 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또 다른 총이 필요한 악순환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총을 만들어 팔고 총을 자유의 상징처럼 여기는 문화를 조성해 이득을 취하는 이익단체들이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기고 관망하기엔 미국의 총기 사고, 특히 무차별적 테러에 가까운 총기 난사 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다. 미 의회가 NRA 로비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연방 상하원 535명의 의원들은 애초에 미국 유권자들이 선출한 이들이다. 유권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행동해야 총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만들 수 있다. 유권자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미국은 어쩌면 중국과의 패권전쟁이나 부채 같은 거대한 정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가진 총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송원석 기자
fattykim@kukinews.com
송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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