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간호대 졸업생, 다 어디로 갔을까?

간호사 배치 기준 개선을 촉구하는 간호사들이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제공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면허를 가진 간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간호사들은 너무 많은 환자들을 홀로 담당해야합니다. 큰 대학병원은 간호사 1명당 12~20명, 요양병원은 40명까지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식사와 화장실을 포기하고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위장병과 방광염에 시달리고, 불규칙한 교대 근무로 수면장애에 시달립니다. 이런 환경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게 만들었고, 면허소지 간호사 중 절반만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간호사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의료계의 해묵은 과제인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축소'가 주요 구호다. 의료연대본부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간호사들의 업무과중 실태를 비판하며 ‘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 제정을 제안하는 청원글을 게시했다. 간호사 1명이 간호하는 환자가 많을 수록, 간호사의 기본권뿐 아니라 환자의 생명도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 청원에 동참한 간호사들의 호소다.

K-간호사, 혼자 수십명 간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보건통계 2021’를 주요 지표별로 분석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간호 인력은 간호사·간호조무사를 모두 포함해 인구 1000명당 7.9명으로 파악됐다. OECD 평균 9.4명을 2명 이상 밑도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간호사만 집계하면 인구 1000명당 4.2명으로 더욱 하락한다. OECD 평균 7.9명보다 3.7명 적다.

현행법은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간호하도록 규정한다.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별표5 ‘의료기관에 두는 의료인의 정원’에 따르면 종합병원·병원·의원이 확보해야 하는 간호사 최소 인원은 한해 평균 1일 입원 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다. 외래환자 12명은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한다. 가령 한해 평균 하루 1000명이 입원하고 3000명이 외래진료를 받는 종합병원은 입원환자 1250명을 2.5명으로 나눠 최소 500명의 간호사를 두어야 한다. 

현행 간호사 배치 기준은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점이 문제다.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별표5를 준수하지 않은 의료기관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명확히 규정한 법 조항은 없다. 즉, 준수하지 않아도 의료기관 운영에 큰 타격이 없는 ‘사문화’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간호사 배치 기준 준수를 권장하기 위해 실시되는 간호등급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받았다. 간호등급제는 간호사 인원을 기준으로 의료기관에 1~7등급을 부여해 간호관리료 명목의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인데, 중소규모 병원은 간호관리료보다 간호사 1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결국, 전국에 몇 안 되는 상급종합병원들만 1등급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간호사 1명이 감당할 수 있는 환자 수의 마지노선은 ‘병원 종별과 관계없이 일반병동 기준 환자 12인’이다. 의료연대본부는 ‘간호 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을 통해 이같이 제한하며 환자 수와 관계없이 병동 단위의 근무조별 간호사 수를 최소 2인 이상으로 정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중환자실에서는 환자 2인당 간호사 1인 이상, 병동 단위의 근무조별 간호사 수는 최소 3인 이상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외상 응급실은 환자 1인당 간호사 1인, 신생아 및 관상동맥환자 집중 치료실은 환자 2인당 간호사가 1인 이상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이외에도 응급실, 소아과 병동, 분만실 등은 환자 4인당 간호사 1인 이상의 기준이 제시됐다.

면허 있어도 ‘생존 위해’ 병원 떠나

현직 간호사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나라에는 간호사 면허소지자가 OECD 평균보다 많다. 국내 간호대학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신규 간호사 인원은 매우 풍부한 편이다. 간호대학 졸업자는 2019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40.5명으로 파악됐다. 이는 OECD 평균 31.9명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간호대학을 졸업한 이후 신규 간호사들이 지속적으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낮다. 간호사 면허를 소지하고 있지만, 임상에서 환자를 보는 임상 간호사로 일하지 않는 인원이 많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의 면허관리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41만4983명이다. 하지만 같은해 병원 종사 의료인력 수 가운데 간호사는 19만3043명, 전체 면허소지자의 46.5%에 불과했다.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처우 등 고질적 문제가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대한간호협회가 간호사 1만42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병원 교대근무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 10명 중 4명(41.6%)은 근무 중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이 15분∼30분 미만이었다. 15분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33.1%에 달했다. 휴게 장소가 없다는 응답은 61.2%에 달했으며, 12.1%는 남녀간호사의 탈의실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힘들다고 답한 비율은 23%, 1년으로 정해진 육아휴직 기간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30%로 조사됐다.

한국과 다른 해외 간호사 근무 환경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강제력 있는 법으로 규정한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은 미국간호협회가 “안전한 인력배치가 생명을 살린다”는 슬로건으로 2003년부터 연방법 입법 운동을 지속했다. 14개 주에서 간호인력 배치와 관련된 법률을 시행 중이며, 캘리포니아주가 최초이자 대표 사례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1999년 간호사 배치기준을 법제화 했으며, 2004년 1월1일부터 관내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중환자실 및 일반병동의 최소 간호사 대 환자 비율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중환자실·신생아중환자실, 분만장, 응급중환자실은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을 두어야 한다. 소아과, 응급실, 암 병동 등 기타 특수 분야는 환자 4명당 간호사 1명을 둔다. 내·외과 병동은 환자 5명당 간호사 1명, 정신병동은 환자 6명당 간호사 1명을 둔다. 책임간호사와 수간호사는 제외한 실무 인력만으로 이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독일은 재정적 지원과 강력한 법적 규제를 병행한다. ‘간호강화법’을 시행, 2018년 8월부터 독일 내 모든 병원과 너싱홈(장기요양병원·nursing home)이 채용하는 간호 인력의 인건비는 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급여로 환급해 보장했다. 아울러 2019년 1월부터 시행된 병원의 간호인력 최소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의료기관에 벌금을 부과하고, 일부 주에서는 최소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병원은 중환자실을 폐쇄할 수 있다. 너싱홈의 경우 최소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면 신입 환자의 입소를 중단한다.  

일본에서는 의료법 및 의료법 시행규칙에 간호인력의 배치 규정을 두고 병원 등 의료기관이 갖춰야 하는 간호사 배치 표준을 정했다. 일반병동 기준 간호사와 전체 환자 수는 1:3, 요양병동은 1:4, 외래 환자는 1:30 등이다. 이같은 법정 표준을 충족치 않는 의료기관은 도도부현과 후생노동성이 현장점검·개선지도·인원증가 명령·업무 정지 처분 등 조치를 취한다. 특히, 특정기능병원은 법정 종사자 수 표준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후생노동대신이 특정기능병원 명칭 승인을 취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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