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버티기’가 기본값인 한국…외국은 어떻게 보호하나 [폭염, 일터를 덮치다⓷]

폭염 ‘버티기’가 기본값인 한국…외국은 어떻게 보호하나 [폭염, 일터를 덮치다⓷]

미국, ‘물·그늘·휴식’ 원칙…2시간마다 15분 휴식 의무 추진
그리스·이탈리아, 낮 시간 야외작업 법으로 금지
일본·중국, 폭염지수 기준으로 작업 제한
정부, ‘2시간마다 20분’ 휴식 의무화…11일 최종 통과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노동자들은 여전히 쉬는 시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주요 국가는 폭염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산업재해로 간주하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명확한 책임을 부여하고 법적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쿠키뉴스는 앞선 기사 ‘“기준도, 그늘도 없이”…찜통더위 속에서 버티는 노동자들 [폭염, 일터를 덮치다⓵]’를 통해 쉴 틈 없는 노동 환경과 제도적 공백을 조명한 바 있다. 이번 편에서는 주요국의 폭염 대응 사례를 살펴보고, 그에 비해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한국 제도의 현실을 짚어본다.

미국은 지난해 연방 차원에서 폭염 속 노동자 보호를 위한 고온 안전 규제 도입 절차에 착수했다.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물·그늘·휴식(Water, Shade, Rest)’ 원칙에 따라, 일정 온도 이상에서는 사업장이 반드시 그늘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방 규칙 제정을 추진 중이다.

고용주는 열지수가 화씨 80도(섭씨 27도)를 넘으면 물과 그늘을 제공해야 하며, 신규 및 복귀 노동자에겐 점진적인 작업 적응 기간도 마련해야 한다. 화씨 90도(섭씨 32도) 이상일 경우엔 2시간마다 최소 15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고, 건강 이상 징후 모니터링, 비상대책 마련, 전담자 지정 등의 조치도 의무화된다.

이는 연방 차원에서는 처음 도입되는 규제로,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인 캘리포니아·워싱턴주 등의 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하는 취지다. OSHA는 해당 규정이 시행되면 약 3600만 명의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 일부 국가는 폭염 시 노동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그리스는 섭씨 40도를 넘는 지역에서 건설 노동자, 배달원, 택시기사에게 강제 휴무를 명령하며, 위반한 사업주에게 약 321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탈리아 역시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건설·농업·도로공사 등 야외작업을 금지하며, 오는 9월까지 이를 유지할 계획이다. 이들 조치는 단순한 권고가 아닌 법적 강제력이 있는 의무 규정이다.

일본은 7~8월 폭염 관련 지수(WBGT)를 기준으로 폭염 대응 수준을 구분한다. 기온, 습도, 복사열을 종합 반영한 WBGT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야외작업을 중지토록 하고 있다. 중국도 기온에 따른 근로·휴식 기준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은 자율적 조치보다는 법적 기준과 강제력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그간 폭염 대응이 ‘지침 수준’에 머물렀다. 고용노동부는 폭염경보 시 ‘적절한 휴식시간 제공’과 ‘옥외작업 단축 또는 중지’를 권고했지만, 강제력이 없어 사업장별 편차가 컸다. 실제 산업안전보건법상 휴식시간 제공 의무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폭염을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 요인’으로 명시하고,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영세사업장 부담’을 이유로 재검토를 권고하면서 시행이 미뤄졌다. 이후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고용부는 재심사를 요청했다.

규개위는 당시 재검토 사유 중 하나로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전국 단위 일률적 법령이 드물다는 의미에 가까울 뿐, 실제로는 미국 주정부, 유럽 각국, 일본, 중국 등에서 실질적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편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의무 조항은 11일 규개위 세 번째 심사를 거쳐 최종 통과됐다. 규개위는 해당 조항이 더는 ‘규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시행 이후 실태조사와 소규모 사업장 대상 지원 계획 마련을 조건으로 개정안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 폭염 대응 기준이 ‘지침’에서 ‘의무’로 전환되는 첫걸음을 뗐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현장 관리와 이행 점검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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