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제외한 상법 개정안, 증권가·재계 의견 엇갈려

‘집중투표제’ 제외한 상법 개정안, 증권가·재계 의견 엇갈려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상법 개정안 통과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증시 활성화 공약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 다만 집중투표제 도입은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업계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는다. 증권가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재계는 도입될 때 경영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 제한(3%룰)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명문화 △전자주주총회 도입 △상장회사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를 통해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특히 3%룰은 기존 사내이사 감사위원에만 적용되던 규정을 사외이사 감사위원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기존에는 사외이사 감사위원의 경우 다수 계열회사를 동원해 3%내외로 지분을 분산시켜 우회선임하는 등 일종의 편법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3%룰 합산 적용에 따라 대주주가 원하는 후보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가능성은 낮아지고,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연대가 추천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은 대주주가 사내이사까지 겸임하거나, 이사회가 대주주(총수일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이사회 감독이라는 감사위원회 본연의 역할은 무색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라며 “합산 3% 룰 적용 등은 종전 규제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감사위원회 독립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여야 간 최대 쟁점이었던 집중투표제는 제외됐다. 집중투표제는 상장 기업 이사를 선임할 때 보유주식 1주당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세 명을 뽑을 때 주식 1주를 가진 주주는 세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로 인해 주주가 각 이사에게 투표권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함에 따라 소액주주도 특정 이사를 선임할 기회를 제공한다. 집중투표제는 사외이사 감사위원 확대와 함께 향후 공청회를 열어 추가 논의하기로 결정됐다.

증권가에서는 집중투표제를 포함해야 상법 개정안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으로 봤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집중투표제처럼 소수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핵심 조항이 빠져 개정안 실효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며 “3%룰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모두 개정안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 시장의 기대감이 희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더 많은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는 장기 성장 동력 악화로 부침에 시달릴 수 있다.

경제 8단체(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는 상법 개정안 통과 후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상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아쉽게 생각한다”라며 경영권 보호를 위한 즉각적인 보완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국회도 경제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필요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경영 판단원칙 명문화, 배임죄 개선,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집중투표제를 모든 기업에 일괄 적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집중투표제를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기업 자율에 맡긴다. 일본은 상법상 허용되나 다수 기업은 적용받지 않는다. 독일은 집중투표제가 없고, 제도보다 협의 시스템과 공동결정 모델을 사용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집중투표제는 이사회 다양성 제고 효과가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경영진이 구성한 전략적 이사회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기업의 장기 비전 추진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며 “국제적 스탠다드와 국내 상황 간의 간극을 충분히 고려해, 장기적 유도와 경영권 방어 수단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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