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가장 정확한 길이측정 장비는 1m 기준이 되는 ‘길이측정표준기’다.
세계 각국의 측정표준 대표기관이 운용하고 있는 길이측정표준기는 단파장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해 길이를 측정한다. 단파장 레이저는 눈금이 촘촘한 자처럼 파장이 매우 고르게 분포돼 1~10㎚ 수준의 정밀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길이측정표준기는 단파장 레이저의 파장범위가 좁아 한 번에 측정할 수 있는 길이가 제한적이다. 눈금은 촘촘하지만 길이 자체는 짧은 자와 같은 셈.
레이저 파장범위를 넘어서는 길이를 재려면 여러 번 측정을 반복하고 측정값 합산이 필요해 측정시간이 오래 걸리고 간섭계 위치를 안정적으로 옮기는 장치가 필요해 시공간 제약이 크다.
반면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은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긴 거리를 한 번에 측정하는 장비다.
주로 기준점에서 측정 대상을 향해 빛을 쏘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산출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장비 소형화가 가능하고 먼 거리도 빠르게 잴 수 있어 산업 현장 활용도가 높다.
다만 기존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의 측정 정밀도는 ㎛ 수준이 한계였다. 빛이 이동하는 시간을 일정 이상의 극미세 간격으로 측정하는 것이 현재 기술로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초고속·초정밀 절대길이측정 시스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길이형상측정그룹이 양자물리학이 허용하는 한계 수준의 정밀도를 갖는 길이측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를 갖추면서 야외 환경에서 구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해 차세대 길이측정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KRISS 연구진은 ‘광 주파수 빗(Optical Frequency Comb) 간섭계’를 이용해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의 정밀도를 길이측정표준기 수준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에 광 주파수 빗 간섭계를 적용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광 주파수 빗은 피아노 건반처럼 일정한 간격을 갖는 수천 개의 주파수로 구성된 빛의 다발이다.
기존 간섭계의 광원들과 달리 광 주파수 빗은 파장 범위가 넓으면서도 파장의 배열은 매우 일정한 간격으로 정돈되어있어 긴 거리도 한 번에 정밀 측정할 수 있다.
연구진이 개발한 광 주파수 빗 분광 간섭계 기반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은 길이측정표준기의 정밀도와 절대길이측정 시스템의 간편함을 모두 갖췄다. 시스템의 정밀도는 0.34㎚, 현존 장비 중 최고 수준이자 양자물리학에서 도달 가능한 한계 수준이다.

측정 속도는 25㎲로 야외 환경에서 구동할 수 있을 만큼 빠르고 간편해 첨단 산업현장의 길이측정 정밀도를 한층 높일 전망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을 차세대 길이측정표준기로 등재할 수 있도록 장비측정 불확도를 평가하고 성능을 지속 개선하는 등 후속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장윤수 KRISS 길이형상측정그룹 선임연구원은 “AI반도체, 양자기술 등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나노미터 단위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고 제어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며 “이번 성과는 우리나라가 차세대 길이표준을 제시하는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