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보험 지급되자 치료사가 사라졌다…발달치료 지원 ‘딜레마’

실비보험 지급되자 치료사가 사라졌다…발달치료 지원 ‘딜레마’

서울 강동구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본관에 있는 어린이 언어치료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비를 민간 보험사가 보장하면서 오히려 치료를 받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간 병원의 치료비가 오르고 저렴한 복지관 치료사는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부담이 커진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아이들의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동구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본관에 들어서면 1층에 웩슬러 등 진단 도구가 놓인 언어진단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이들의 발화를 돕기 위한 단어 카드와 노란 자동차 바닥재가 깔린 언어치료실도 있다. 비용을 사비로 내고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바우처로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바우처실’은 지난 2023년 사라졌다.

서울복지관은 국내 1호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1982년 설립됐다. 1992년 처음 언어치료실을 설치하고 언어진단과 언어치료교육을 시작했다. 발달지연 아동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설 병원보다 저렴하고 가장 수준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회당 비용도 1만원 내외로 월 22만원(2021년 기준) 규모의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활용하기에도 적절했다.

서울복지관이 바우처 언어치료를 중단한 것은 지난 2023년 10월이다. 당시 종료 안내문을 보면 “언어치료가 실비보험이 되면서 병원에서 언어치료사 채용이 늘어나 장애인복지관이나 사설센터에서도 치료사 수급이 어렵다”고 돼 있다. 바우처 사업은 복지관과 별개로 전담 언어치료사를 두고 운영해야 하는데, 채용이 어려워 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실비보험 인정하자 치료비 10배…보험사는 ‘지급거부’

강정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총장은 “실비보험이 인정되면서 연간 평균 회당 치료비가 10~12만원까지 올랐다”고 지적한다. 발달장애 아동 보호자들은 “바우처 이외의 비용을 계속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급여 체계 내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부모연대가 공개한 기관별 회당 치료비 격차를 보면 △민간 병원 10~12만원 △사설 발달센터 5~10만원 △장애인복지관 평균 3만5000원이다. 민간과 사설이 보험사의 실비 처리를 이유로 비용을 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사무총장은 언어치료사들이 민간이나 사설로 이동하며 복지관의 저렴한 치료는 줄어들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부모연대는 보험사가 부풀려진 치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보험비 지급을 거부한다고 봤다.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 미지급 대상인 F코드를 부여한다는 주장이다. 송수민 부모연대 발달지원특위 부위원장은 “같은 인지치료와 언어치료를 받는데 치매는 보장이 되고, 발달지연 아동은 면책이라 보장이 안 된다”며 “보험 상품 표준 약관에서 F코드를 왜 제외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언제 발병이 됐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가격을 통제할 수 없다 보니 전체 계약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지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국가에서도 보장하지 않는 부분을 민영 보험사가 해야 한다는 설득이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2016년생 8만명은 조기개입 필요…“지급거부 일부 개선”

발달지연 아동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은희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2016년에 출생한 아동 41만명 가운데 발달을 위해 조기개입이 필요한 아이들은 약 20%(8만명)이다. 이 가운데 등록장애인과 장애고위험자는 42%로, 발달의심증상자(3만명 이상)와 발달유소견자(약 2만명)가 58%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이 조기에 치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 발달지연 평가와 치료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1회 이상 추가 검사 소견을 받은 조기개입 필요 아동 8만명 가운데 실제 정밀평가를 받는 아이들은 24.7%에 그쳤다. 이후 중재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7.9%로 더욱 적었다. 최 부연구위원은 “중재치료 이용이 급여 범위에서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보험사 약관대로라면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 발달의심증상자와 발달유소견자는 R코드로 보험금 지급 대상이다. 반면 등록장애인과 장애고위험자는 충분한 치료에도 발달 개선이 어려운 F코드를 받아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 있다. 8만명 가운데 절반은 발달지연 치료를 받더라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보험사가 의도적으로 코드를 바꾼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은 “R코드에서 F코드로 진단 코드를 변경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비율이 해마다 굉장히 가파르게 높아졌다”면서 “지난 국정감사 때 금융감독원장에게 관련 질의를 하고 시정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은 관련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급 거절을 위한) 의료 자문 문제가 일부 진전됐다”며 “객관적 증거가 없는 진료 과목에 대해 일부 줄어든 수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관상 지급해야 하는 부분은 지급하도록 감독하고 추후에는 제도를 개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박동주 기자
park@kukinews.com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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