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설정한 의과대학생 복귀 시한이 지난 가운데 전국 의대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에 돌아오며 의료계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의대생 복귀로 투쟁 동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전공의들의 거취가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40개 의대 중 인제대를 제외한 39개 의대 학생이 등록을 마치면서 대규모 제적 위기는 모면하게 됐다. 인제대는 학생들에게 오는 5일까지 등록하라고 안내한 상태다.
의대생 복귀가 이뤄지며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정부는 3월 내로 정상 수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기존 계획대로 5058명 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교육부는 의대생 복귀 규모를 최종 집계하고 의대생이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지를 파악할 방침이다. 교육 현장에선 의대생 복귀율이 50%를 넘기면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등록 시 제적’이라는 대학들의 초강수와 의대 학장을 중심으로 한 설득에 의대생들의 단일대오가 깨지면서 전공의 복귀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일부 전공의는 의대생이 학교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수련병원에 복귀했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서울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근무 전공의는 인턴 73명, 레지던트 320명으로 총 393명이다. 이는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밝힌 빅5 병원 근무 전공의 238명보다 155명 늘어난 수준이다.
의대생 복귀가 이어지자 전공의들 사이에서 ‘각자도생’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방 의대 내과 1년차 사직 전공의 A씨는 “초반엔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사정을 따지는 분위기가 됐다. 예전처럼 한목소리를 내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의대생 복귀로 전공의들의 투쟁 방향도 점점 갈리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지방 의대 신경과 2년차 사직 전공의 B씨는 올 상반기에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 지원하지 못했는데, 하반기엔 다시 수련을 이어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련을 재개한 전공의는 지난해 3월 임용 대상자 1만3531명 중 12.4%에 그쳤다. B씨는 “솔직히 수련병원에 돌아가고 싶지만, 복귀하는 순간 배신자 낙인이 찍할까봐 두렵다”면서 “먼저 복귀한 동료들이 손가락질 받는 걸 보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하반기엔 주변 분위기를 살펴 지원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여전히 전공의 10명 중 8명 이상이 수련을 거부하고 있어 당장의 사태 해결은 어렵겠지만, 하반기 모집이 이뤄지는 8~9월엔 상당수 전공의가 복귀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제기된다. 수도권 대학병원 신경외과 C교수는 “이번 의대생 복귀가 전공의 복귀의 결정적인 역할이 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하반기 모집이 이뤄지는 8월까지 정부와 의료계가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다면 복귀를 기대해볼만하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의대생처럼 개개인의 상황이 같지 않고 제각각이라 의중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고, 대다수가 의료기관에 취업해 일반의로 근무하고 있는 점은 복귀의 변수로 꼽힌다. 남자 전공의는 군 복무 문제가 얽혀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 가운데 5467명은 다른 병·의원에 재취업했다. 지난달 880여명은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입영했다.
전공의 단체 대표는 여전히 강경한 모습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복귀 의대생들을 향해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이 뭘 하겠다고”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은 “죽거나 살거나, 선택지는 둘뿐”이라며 “저쪽이 원하는 건 결국 굴종 아닌가”라고 적었다.
의정갈등 사태가 1년 넘게 지속되며 의료계에선 투쟁보다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의료계는 이제 사태를 수습하고 정리해 새로운 투쟁 방향으로 재조직화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의정갈등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로부터 얻은 게 무엇인지 잘 정립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따낼 건 따내는 게 지금 가장 명확히 해야 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생들이 등록만 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대량 유급 사태가 불 보듯 뻔하다”라며 “지금이라도 대한의사협회가 중심이 돼서 전공의, 의대생, 교수들을 다 아우르는 합의안을 도출해 정부를 설득하든 압박하든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